한량없이 펼쳐진 사막이나 아득히 이어지는 평원에서는 막막한 권태를 느끼기 마련이라 하오. 아무리 마음 맞는 길벗과 동행한들 가도 가도 무덤덤한 모래 언덕뿐이거나 펑퍼짐한 들판이 끝 모르게 계속된다면 그 단조로움에 차츰 싫증이 날 거고 마침내는 질식하고 말 것이오.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해 보거나 이집트 쪽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의 아기자기한 자연경관이야말로 빛나는 보석이라고 말합디다.
산모롱이 한 굽이돌면 또 다른 모습이 기다려 가슴 설레게 하는 우리네 산야. 굽이굽이 절경을 맺히고 어르면서 아름다이 전개되는 한국의 자연은 여행에 소롯한 잔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할 것이오. 그렇듯 대지는 굴곡이 많아야 절묘한 경관을 연출시킬 수 있다오. 지형에 기복이 심할수록 볼거리가 다양하므로 눈이 즐겁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관광지로서의 유럽은 특이한 곳이었소. 지역마다 독특한 자연경관과 인공 건조물이 특색 있게 교차되며 줄곧 시선을 긴장시키는 거였소. 그 색다른 감동, 그 커다란 경이감. 유럽 전역은 놀라운 전환의 명수였소. 비슷하게 계속되는 풍경에 지칠만하면 새로운 풍물을 보여 주어 어느새 산뜻이 환기되는 기분.
장엄 화려한 중세 건축물에 압도당하다 못해 지질려 이마 짚을 즈음이면 지중해의 감벽 해안이 환호하게 만들지요. 자연에 싫증 낼 만하면 성과 성곽의 조화가 나타나고 그러다 다시 녹 빛 천지인 전원이 유유한 강줄기와 함께 평화를 선사하는 거였소. 궁기가 묻어나는 중부 이탈리아의 메마른 산야에 혀를 차다 보면 르네상스의 회화와 조각 건축이 눈을 호사시켜 주었소.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식상하는 법. 이번에는 산간 초지의 광활한 목장과 짙푸른 침엽수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오. 이렇듯 유럽 전체가 한 묶음의 관광 자원으로 적절하게 꾸며져 있어 마치 의도적으로 연출시킨 듯하였소.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부터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에 이르는 길은 진초록 일색이었소. 청청한 푸르름에 눈의 피로는 물론 여독마저 알뜰히 씻기는 기분이었소. 장엄하고 기품 있게 솟구친 산. 붉은 지붕의 뾰족집. 창에 내걸린 색색의 화분들. 이처럼 산뜻한 색채 대비 속에 사는 사람들이니 마음속에 경쾌한 노래를 심고 살 수밖에요. 더욱이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은 자연, 한 점 공해 없는 환경이 부럽기만 하였소. 인간과 자연이 이룬 가장 조화로운 모습이 거기 있었던 거라오. 뭉게구름 한가로운 하늘은 청명이 드높았고 투명한 대기, 바람인들 오죽 맑고 상큼하리까.
아쉽게도 오스트리아는 하루 낮과 밤에 스치는 경유지였소. 모차르트 하이든 등 기라성 같은 음악가의 생애가 수놓아진 거리도, 다뉴브강의 잔물결도 만나 볼 수가 없었지만 저 멀리 흰 눈을 인 알프스 준봉과 나눈 눈인사만으로도 만족했더랬소. 나치의 압제를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탈출하는 마리아 일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끝 장면이 떠오르는 산간을 지나 잠시 멈춘 키츠버그. 전형적인 알프스 산록의 한적한 촌락이었소.
하지만 적요를 깨는 탄성과 함성이 불꽃놀이처럼 명멸하는 곳. 지형의 특색을 이용하여 래프팅 상품을 내걸고 한창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중이었소. 모험과 낭만이 가미된 래프팅은 구명조끼를 입고 고무보트에 의지, 급한 물살을 타고 내려오는 스릴 넘치는 레저 스포츠 아니오. 석회질의 희뿌연 강물이 거칠고 힘차게 흘러내리며 더러는 배를 뒤엎기도 하는 거였소. 그때마다 터지는 즐거운 비명과 신나는 함성. 원시의 리듬 같은 격정의 물소리를 달래듯 강변의 밀밭은 누렇게 익어 천천히 술렁였고 들길 크로버 민들레는 다소곳 조촐했소. 게다가 뜻밖에도 다홍빛 해당화가 무더기로 피어 매혹의 향기를 띄우고 있었소. 열대나 한대지방처럼 특수한 기후대가 아니라면 동. 서양 어디라도 식물 분포가 유다르지는 않은 모양이오.
알프스에 어스름이 내릴 즈음. 우리는 그림엽서에서 본 듯한 아담한 산장 오두막에 닿았소. 통나무와 석회로 지은 작은 집. 모텔과 카페를 겸한 장난감 같은 그 집은 여느 숙소와는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소. 아늑함, 다정함 또는 인간의 체취가 묻어나는 서정적인 다사로움. 동화 속 이야기 마냥 통나무 낮은 침대에 들기까지 모두가 다 특별한 재미를 안겨 주었소. 물론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못되므로 도회적 취향 쪽에는 맞지 않을 거외다. 편의 시설도 제대로 갖춰 있지 않으니 불편이 따르기도 하지만 하룻밤쯤 파격의 멋이 아닐 수 없었다오.
조그만 창 너머로 별빛이 보이고 계류 밤새워 목청 돋우던 산속의 그 방. 야청빛 밤하늘을 바라보다 잠들고 싶었지만 싸한 냉기에 커틴을 여며야 했다오. 게서 나는 오래 부엉이 소리나 산짐승 발자취에 귀 기울이고 싶어졌더랬소. 아니, 알프스가 뿜어내는 야기에 흠뻑 젖어보고 싶어 마음은 밤새 창밖에서 서성였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