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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I'm sorry!

by 무량화

우리 동네에서 삼십여 년 거주하다가 산 하나 넘어 밸리로 이사를 간 교우 가정이 있다.

우리가 여기로 옮겨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분네들은 이사를 갔기에 친분 두터이 쌓을 새도 없었다.

잊지 않고는 지내지만 어쩌다 가끔 안부나 묻고 지내는 정도였는데, 어제 모처럼 베네딕도 자매한테서 연락이 왔다.

"너무 부러워서 전화했어요. 산티아고를 다녀오셨나 봐요. 신문에 난 글을 읽고 어찌나 좋아 보이던지..."

가톨릭 신문에 매주 문화산책 한 꼭지씩을 게재하는데, 지난주에 실렸던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꼭 걷겠노라는, 카미노 여정의 프롤로그 글을 읽었던 것.

전부터 그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생업에 매여 팍팍하게 살다 보니 시간이 여의치 않은 채 그저 마음만 굴뚝같았다는 그녀.


부부가 다 모태신앙으로 매우 신실한 교우인

그분들은 은퇴하면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서자고 했다는데.

그 길은 잘 알다시피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치유의 길, 바로 스페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스페인어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해마다 십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찾는 길로, 프랑스 남쪽 생장피드포르에서부터 시작하여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에 위치한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무려 800km에 달하는 길로 그 외에도 여러 코스가 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주의 주도이며 정식 이름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산티아고(Santiago), 영어로는 생 제임스(St James), 불어권에서는 상자크(Saint Jacques), 스페인어권에서는 산티아고, 우리 식으로는 야고보 성인이겠다.

예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고기 잡는 어부였으며 훗날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

9세기 초 어느 기독교 순례자가 빛나는 별을 따라 스페인의 이곳을 찾아왔는데 그때 그 자리에서 발견된 유물로 미루어 야고보 무덤임이 밝혀지게 되었다는데.


스페인 전교활동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그의 유해가 어떤 연유로 '별들의 들판'이라는 스페인 여기에 닿았는지는 신비에 속하겠고.

그로부터 몇 년 후 알폰소 2세가 그 터에 대성당을 웅장하게 짓고 산티아고를 스페인의 수호성인(聖人)으로 모시게 되었다.

9세기 유럽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산티아고를 돌아보는 성지순례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산티아고를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함에 따라 기독교 3대(大) 성지(聖地)의 한 곳이 되었다.

중세 유럽의 산티아고 길은 가톨릭 순례자의 길로, 속죄를 위한 금욕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고행하듯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근 8백 년 간을 무슬림인 무어족의 지배하에 있던 당시에는 순례의 길이 실제로 여러 위험이 따르는 고난의 길이기도 하였다고.

세상이 바뀌어 1982년 교황이 산티아고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다시 산티아고 순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1993년에는 유네스코가 이 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하면서 부각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새롭게 각광받게 된다.

특히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후 1997년 발표한 <연금술사>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자신과 동행하는 내면(內面) 여행을 통해 삶의 본질과 마주서보고자 걷는 길.


나아가 반복되는 일상의 타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고자, 또는 여태까지의 삶을 반추해 보며 남은 생을 재설정하고자 산티아고 길을 느릿느릿 걷는다는 순례자들.

전 구간을 완주하는 데 평균 한 달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는 데다 고원으로 이어지는 피레네산맥, 평원지대와 구릉지대, 끝없는 포도밭, 드넓은 목초지, 물결치는 밀밭길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접할 수 있는 그곳.

산티아고 길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의 순례길은 차도(車道)와 분리되어 있어서 사고의 위험도 거의 없다.

급경사 진 산악지대도 아니고 고산증세를 유발하는 고산지대도 아닌 흙길로, 어느 정도 체력만 받침 되면 충분히 한 달 넘어 걸어도 별로 큰 무리가 없는 여건이며 환경이다.


다만 체력을 과신하고 지나치게 욕심부리면

내 경우처럼 초장인 피레네 산중에서부터 항복하게 된다.

남프랑스 생장에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하얀 조가비와 노란 화살 이정표를 따라 걷고 또 걷는 길.

이제는 은퇴를 한 터라 베네딕도 그녀에게도 여가가 생겨 구체적으로 산티아고 꿈을 실천에 옮기려던 중, 무릎 관절이 탈 났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고 현관에서 미끄러지며 고관절을 크게 다쳐 몇 달째 거동이 불편해 침대생활만 하는 중이라는 그녀.

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 상위에 오른 그 길, 간절히 그리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려던 참에 그녀는 이같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며 불가피하게 주저앉았다.

그런 입장에서 아는 교우가 쓴 글, 산티아고 길을 반드시 걷고야 말리라는 다부진 각오 혹은 염원을 천명한 글을 읽었으니 나의 건각이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신문에 카미노 여정기는 앞으로 한동안 펼쳐질 터, 그중 최상의 마무리로 각인된 루르드에서의 몇 날 기록도 읽게 될 거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환우들에게는 신비의 기적수로 널리 알려진 루르드다.


루르드에서 여러 병 담아 온 기적수인데 이미 다 선물한 뒤, 만약 여분이 있었다면 그 당장 그녀 집을 찾았으련만.


부부 공히 오매불망 꿈꿔온 산티아고라 그녀는 자신의 와병으로 형제님까지 발이 묶이게 되자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했으나 머리를 젓더라며 내 탓이오! 만 연발했다.


누군들 아니 그러하랴마는 그분의 경우야 더더욱 홀로 순례길 나설 리 만무다.


나중에 다음에... 그리 미루다가 이처럼 기회를 놓치고 말기에 어디든 다리 튼실할 때 여행 다니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교민들의 경우 대개가 생업에 묶여 요지부동, 절기 따라 휴가여행을 다닌다는 건 호사이고 사치라 은퇴 후 타령만 한다.


정작 일에서 벗어날 즈음엔 그간 혹사시킨 몸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는 베네딕도 자매의 처지를 산 넘어 사는 내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만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민망하고 미안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럴 때 I'm sorry,라는 표현 외엔 달리해줄 말이 퍼뜩 생각나지 않았다.

조섭 잘하시고 어서 쾌차하시길 기도할게요, 상투적으로 들리는 이 언어가 궁색하다 못해 겉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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