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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과 역사가 있는 풍경

by 무량화


전에 살던 집 베란다에서도 어쩌다 가끔 대마도가 잡히곤 했다.

아슴아슴 희미한 윤곽으로 바다 저 멀리 띠처럼 나타나던 대마도.

여기서 보이듯 저쪽에서도 마찬가지, 걸핏하면 왜구들은 부산포 일대로 노략질하러 왔다.

종당엔 고니시가 이끈 왜적이 조총 들고 밀려와 동래성 부산진성 다대포진이 함락당한다.

아비규환의 참상을 남기고 내륙길 뚫리며 18일 만에 한양까지 왜적은 단숨에 유린해 버린다.

결국 선조는 종묘사직과 백성을 내팽개치고 대국으로 떠받든 명나라 가까운 의주로 도망친다.

그만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와는 참담한 전쟁사로 뒤얽힌 왜 나라다.

일본이 바로 지척거리, 조오련 선수는 도버해협보다 네 배나 되는 너비의 대한 해협을 헤엄쳐 건넜다.



흰여울마을 전망대에 서니 조망권 일품이다.

눈 아래 망망한 대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원양어선이며 컨테이너선 같은 대형 선단이 줄줄 정박해 있는 남항.

왼쪽으로는 태종대 앞 주전자 섬이 보이고 오른쪽 끝자락엔 송도 인근 섬들이 질펀하다.

수평선 저만치로는 길게 누워있는 육덕진 몸매가 드러난다. 대마도다.

육안으로 이렇듯 커다랗게 떠오른 대마도를 보기도 첨이다.

손 뻗으면 곧장 맞닿을 듯 가까운 이웃, 참으로 심경이 복잡미묘해진다.

어쩌면 노론소론 갑론을박 싸움질에 여념 없었던 조선국, 당시 신장된 국력에 군사력 증강해 힘이 넘쳐났다면 군침 흘릴만한 거리.

손아귀에 넣어버리고 싶은 충동 충분히 일게 하는 바로 지척거리에 있는 한일 양국 간이다.

남 탓하고 남 나무라기에 앞서 내 탓이오! 못내 어리석어 유린당한 국권이며 민족 수난사 자초한 못난 군주 뫼신 백성임에 가슴을 칠밖에.

정글숲되어 서로 견주며 따지는 셈법 난무하는 국제관계에서 지금도 그 의미는 유효하다.



흰여울마을 골목으로 내려선다.

어깨 부딪힐 듯 비좁은 길에다 꼬불탕 제멋대로 난 돌층계는 가파르다.

서로 어깨 비비며 한치라도 더 뉠 자리 확보하려는 안간힘 새겨진 골목에서 고단한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육이오 동란 시 피난민들이 몰려든 부산에는 자연스레 산기슭 여기저기 판자촌이 들어섰다.


일감이 있는 부산역 인근은 일찍 내려와 터 잡은 사람들 차지, 나중에 온 사람들일수록 도심에서 점점 멀어졌다.


부산항 맞은편 영도다리 건너로 밀려나 가장 늦게 형성된 산동네가 여기다.


더 이상 몰릴 수 없는 삶의 벼랑 끝몰려 바닷새 집 짓듯 절벽에다 엉성하게 꾸린 피난민들의 터전이었다.


얼마나 가슴 시렸으랴, 얼마나 눈물 흘렸으랴, 고달픈 나날을 비굴하게 남루하게 살아내야 했던 자취 역력한 허름한 골목길.


담벼락 글과 그림은 그럼에도 희망을 얘기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던가, 어느 하세월 이 달동네에 해 뜨겠나 싶었는데 시대가 바뀌며 천지가 개벽했다.


그러나 이 변모와 발전상이 현지민들에겐 별로 달갑지가 않다고 한다.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때문이다.


호기심 어린 외지인들에게 삶의 안자락이 수시로 들춰지고 담담한 일상 표정이 카메라에 담기고 화기애애한 구경꾼의 소음은 소란스럽고...


내 집 빨랫줄에 걸린 속옷이 누군가 낯선 사람 눈에 띄었다고 가정해 보라, 매사 조심해야 한다는 게 퍽이나 신경 쓰이는 일일 게다.


별도로 카페나 군것질 가게 거리가 따로 나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골목을 들어가도 불쑥불쑥 자리 잡은 고만만 한 점포들, 힐링 센터니 타로 점집이니 서점이니 사진관이 혼재해 있다.


바다 외에 아주 편하게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배경 액자는 벽화와 벽 글씨, 아마도 문화마을 조성하며 나름 비중 있게 배려한 공간이지 싶다.


후딱 사진만 찍고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맘에 드는 글귀나 정경 만나 한참 뜸 들인 채 음미한다.


그럴 땐 누구라도 한 박자 쉬면서 느림의 미학을 여유 있게 즐기다 떠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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