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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5. 2024

못 말려

임시 보모

요즘 일이 하나 더 늘어 임시 보모 노릇까지 하느라 바쁘다.

건사료와 우유는 하루 두 번 요만큼씩,

깡통 먹이는 따서 뚜껑 있는 그릇에 덜어두고 작은 스푼으로 둘.

물은 날마다 갈아주고 간식은 적당히 나눠주라며 일일이 시범을 보였기에 그대로 따라서 한다.

손주가 기르던 새끼 고양이를 한국 가며 잠시 맡겼다.

털실뭉치같이 쪼맨한 넘이 호기심 천국에 보통 장난꾸러기 말썽쟁이가 아니다.

장난감 공이나 모형 쥐를 갖고도 놀지만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제 노리갯감이 된다.

그렇게 잘 놀다가도 내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난작 책상 위로 올라와 제멋대로 자판을 눌러댄다.

뭘 건드렸는지 주르륵 화면이 뜨기도 하고 소리가 사라지기도 한다.

답글을 쓰다가 녀석의 발 장난으로 몇 번 날려버리기도 했다.

손가락 놀림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손을 톡톡 건드리기도 하는데 어느 땐 갑자기 발톱을 세워 공격도 한다.

녀석 땜에 손등 여기저기 작은 상처가 났다.

쓰리고 아프기보다는 장미 가시에 찔린 듯 묘하게 아리다.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내 기척 쫓아 졸졸 따라붙으며 마치 공이 구르듯 또그르르 내달리는 녀석.

이름을 부르면 어느 구석쟁이에 박혀있다가도 풀피리 소리 같은 음성을 내며 용케도 나타난다.

더구나 고 조그만 녀석이 정확히 모래상자에다 용변을 가리니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야행성인데도 다행히 밤이 되면 잠드는 줄 알고 아침까지 아무 기척 없이 코~ 단잠을 잔다.

변죽도 좋아 환경이 바뀌었건만 오자마자 전혀 낯도 안 가리고 온 집안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닌다.


어느새 침대는 제 운동장이고 의자는 매달리기 운동기구이며 피아노는 뛰어내리기 연습장.

공중부양 중? 뒷마당에서 참새 소리가 나자 그걸 잡겠다고 설치며 방충망에 찰싹.

리스에 보금자리를 지을까 찾아온 이쁜 새를 보자 본능적으로 후다닥~현관 앞 덧문을 민첩하게 기어오른다.

새는 놀라 날아가고 얼떨결에 너무 높이 올라와 버린 냥이 벌벌 떨며 어서 구해줘, 미아옹~ㅎ


천방지축 겁도 없고 세상천지 아무것도 거리끼는 게 없다.


식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쪼르르 올라와 식사 중인 밥그릇을 수시로 넘본다.


하도 귀찮게 하기에 아예 멀찌감치 가서 선채로 먹었더니 청바지를 타고 주르륵 올라와 어깨에 턱 걸터앉는다.


구석구석 어디든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고 여기저기 들추지 않는 곳이 없다.


배냇털에 어느 적 먼지인지 모르는 집안의 묵은 먼지가 붙어있기 일쑤지만 그루밍도 부지런히 한다.


사람을 얼마나 따르는지 낮잠을 자도 꼭 내 눈앞, 내 소지품에 턱을 받치고는 사지 쭉 뻗고 편안히 잠이 든 녀석,


등을 쓰다듬어주자 최상의 안락을 느끼는 듯 또 고르릉거린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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