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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5. 2024

오매! 귀여운 거

너구리

사진-픽사베이


여유작작한 일요일

아침 산책길

이슬 내린 잔디밭을 느릿느릿 걷는다

잔디가 끝나는 숲 가장자리에 무슨 동물인지 두 마리가 보인다

흔한 토끼도 아니고 다람쥐도 아니다

처음엔 단풍나무 기둥에 몸을 숨기고 지켜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도 그렇고 꼬리 생김새가 틀림없는 너구리다

오매~귀여운 거

난짝 안고 가고 싶을 만치(마음으로) 이쁘다

멀리서 설핏 인기척만 느껴져도 잽싸게 도망치는 너구리인데

녀석들은 내가 점점 다가가도 경계하는 기색 전혀 없이 그냥 풀만 뜯고 있다

숲을 제 뜰인양 유유히 노니는 사슴 무리처럼 인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바로 가까이까지 갔는데도 '나 참하게 찍어주세요'하는 듯 빤히 쳐다만 본다

아주 어린 너구리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새끼다

 겁이 없으니 천하태평이다

애들 교육도 제대로 안 시킨 채 밖으로 내보낸 어미, 직무유기다

거기다 어미는 어디 갔는지 새끼들을 방치한 채 근방에도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조심조심

사람이 다가가면 짐승들은 새끼를 지키려 본능적으로 앙칼 떠는 터라 나도 약간 긴장

그러나 한참토록 사진을 찍는 동안 녀석들은 이상한 향이 나는 풀만 쏙쏙쏙 뜯는다

물가에 내놓은 아기가 이러할까, 위험 자체를 모르다 보니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

철없음은 편안함이구나

여유 있게 먹을 것 다 먹고 슬금슬금 숲으로 들어가는 새끼 너구리

아침식사를 방해하지 않아 다행이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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