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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25. 2024

서로 부러워하며

냥이와 멍이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

이와 유사한 우리 속담으로는 남의 밥그릇 콩이 더 굵어 보인다느니, 옆집 논의 벼가 더 실해 보인다느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느니,

하다못해 이웃집 여자가 내 아내보다 더 이뻐 보인다고까지 한다. ㅎ

‘잔디 이론’이란 용어가 있다. 건너편 짝으로 바라다 보이는 잔디밭은 아주 매끈하고도 푸르른 것 같다.

자신이 앉아 있는 잔디는 듬성듬성 엉성하니 맘에 안 들어, 좋아 보이는 잔디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허나 막상 그곳에 가보면 잡풀이 섞이고 울퉁불퉁한 데도 있는 등, 잔디가 고르지 않아 마땅찮기는 매한가지.

밖에서 넘겨다본 것이 전부는 아니며, 멀쩡한 겉과 달리 아무도 모르는 속은 곯아있을 수도 있다.

 

참새나 비둘기가 울 집 뒤란에 날아와 풀씨 같은 걸 쪼아 먹곤 한다.

수돗가에 받아 둔 큰 대야 물도 마신다.

그때마다 멍이는 길길이 뛰면서 새들을 보고 짖어대며 난리다.

산에 데리고 가면 길섶 여기저기 찔끔거리며 영역 표시를 해두는 녀석인데, 하물며 확실한 내 공간에 무단 침입한 새들이다.

따라서 당장 쫓아버리는 건 당연한 일 일게다.

하지만 순식간에 공중으로 휘리릭 날아올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새들 몸짓이 신기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멍이.

그 순간 황망을 넘어 허망할 정도로 부러움 가득한 녀석의 시선이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 맘으로,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 날뛰며 쫓아낸 새가 선망의 대상으로 바뀐다.

그보다 더 자주 멍이는 냥이가 참 부럽다. 실은 둘이 서로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창가 방충망 건너엔 너른 마당 앞뒤 어디건 오만 데로 마음껏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멍이가 있다.

냥이는 그런 멍이가 하냥 부럽다.

한편, 그렇게도 들어오고 싶어 하는 집안에서 그림처럼 고고하게 깔끔 떨며 포시랍게 사는 냥이가 있다.

멍이는 그런 냥이가 더없이 부럽다.

양지쪽 문 앞에 바짝 앉아 볕바라기를 하며 졸고 있는 냥이를 마당에서 낮잠 자다 깬 멍이가 보고는 슬슬 다가온다.

아주 작은 기척에도 반짝 눈을 뜨고 마는 냥이는 가까이 오는 멍이가 영 마뜩잖긴 하다.

그러다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이윽한 눈길로 서로 바라보는 것이, 은근 샘을 내며 피차 부러워하는 눈치들이다.

한참을 서로 가만히 지켜보다가 코를 맞대고는 킁킁거리며 호의적인 탐색전을 펴는 순간, 왕창 산통을 깨는 건 항상 멍이다.

딴에는 기분 좋다고 펄쩍 솟아오르며 왕왕 짖어대거나 쏜살같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새침데기 냥이는 혼비백산 얼른 숨어버리고 만다.

겨우겨우 가까워져 그나마 친해질 뻔한 기회를 멍이는 그렇게 무산시킨다.

 

멍이가 어쩌다 실내에 들어오면 장난감 공이 아닌 진짜 살아 움직이는 냥이가 너무나 좋아 주변을 뱅뱅 돌며 환심을 사려 공을 들인다.

허나 그 행동이 과격하고 거칠어서 외려 냥이의 혼을 빼버려 즉각 도망치게 만든다.

태생부터가 조용한 걸 즐기며 도도한 편인 냥이와 천방지축 나대며 분답게 활동적이기만 한 멍이.

개와 고양이는 원래 앙숙지간이라지만 울 집 녀석들은 성정이 순하고 점잖은 편이라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둘 사이엔 도대체 코드 내지는 사인이 안 맞는, 이를테면 금성여 화성남인 셈이다.

서로 의사소통법이 달라 멍이는 인사를 할 때 꼬리를 흔드나, 냥이는 싸우려고 하는 줄 알고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냥이는 아주 친근한 사이면 꼬리를 바짝 치켜드는데 반해 멍이는 공격 또는 방어 자세를 취할 때 하는 행동이다.

멍이가 반갑다며 저돌적으로 대들면, 순간 냥이는 와락 달려들어 개의 얼굴을 할퀸다.

 

그 둘 사이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너지 못할 강이 가로질러 흐른다.

늘 서로를 부러워하며 밖의 자유를 탐하는 냥이와, 안의 포근함을 동경하는 멍이.

멍이를 안에 들여놓으면 배설 처리를 못해 금방 쫓겨날 게 뻔하고, 냥이를 밖에 내돌리면 담을 타고 달아나 곧장 길고양이가 될 터다.

각각에게 주어진 알맞은 자리나 위치를 벗어나면 그때부터 뒤죽박죽 질서가 엉켜버리며 혼돈으로 이어진다.

세상만사 무엇에나 명암이 따르며 호불호가 공존한다.

좋게만 보이는 것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며, 또 나쁘다고 생각한 것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취할 점이 있다.

곧, 뭐든 매사 좋은 것만도 없고 만사 나쁜 것만도 없다. 모든 것은 느끼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우리는 자주 남과 나를 비교한다.

분수를 지키지 않고 무턱대고 비교하다 보면 내 것보다는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여 남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긴다.

직위와 학벌, 주택 평수나 외적 조건, 어쩌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불행은 시작될지도.

남과 비교하며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데서 괜한 미움이 생기면서 상대적 박탈감마저 들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유사 이래 부귀영화를 누린 제후장상 그 누구도 바람 타지 않는 생이란 거의 없었다.

아무 문제나 걱정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킬레스건은 저마다 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이뤄냈으나 출생 신분부터가 영 민망스럽다.

천하일색 양귀비는 기구하게도 아들과 아비가 동시에 갖고자 다투는 와중에 석녀가 된 불행한 여자였다.

자신의 건강도 여의치 못한 삼성 회장은, 혼외자이건 어쨌건 딸자식의 자살 사건을 겪어야 했고 거기다 금쪽같은 자녀들의 이혼 과정을 지켜봤다.

요지경 속 같은 한국 재벌가의 가십거리만이 아니라, 예부터 왕위 계승에 따른 암투는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을 정도의 秘史가 수두룩하였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최고 자리인들 그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고뇌 겪는 위치이던가.

전직 박 대통령이야말로 별의별 몹쓸 루머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딱할 정도로 파란만장 기막힌 생애를 살아낸다.

서울법대 재학 당시 김태희보다 더 예뻤다는 나 의원, 그 똑똑하고 잘난 여성이 다운증후군 딸로 맘고생을 겪는다.

청춘의 아이콘이던 안철수는 안랩에 정진하면 좋을 것을 정치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진흙 구렁에 빠져 헤어나질 못한다.

김무성 문재인은 권력욕에 발목 잡혀서, 몰라도 좋을 집안 내력까지 샅샅이 까발려져 엉망진창이 되며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으며 산다.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들은 사람의 반 정도만 손뼉을 치는 말솜씨를 들었다.

결국 행복의 조건은 모든 게 채워진 완벽함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어느 정도 부족하고 모자람에서 오는 결핍감에서 그것을 찾았다.

장자에 나오는 고사에  한단지보(邯鄲之步)란 말이 있다.

조(趙) 나라 한단 사람이 잘 걷는다고 소문나, 연(燕) 나라의 한 청년이 그곳에 가서 걷는 방법을 배웠는데 기술을 익히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평소 걷던 걸음걸이까지도 잊어버리고 기어 돌아왔다는 내용의 고사다.

자기 위치나 본분을 잊고 무작정 남의 흉내를 내며 따라 하다 보면 본디 지녔던 것마저 잃는다는 얘기겠다.

내 것은 내 것대로 존재 의미와 가치가 있는 법.

비교하고 부러워하며 밖으로만 향하는 시선을 이쯤에서 거두어들이라는 무언 설법으로 멍이와 냥이가 내게 이 장면을 보여주었나 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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