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어 찾은 용두암에서 지는 해 전송하고

by 무량화

제주, 하면 내 기억회로에 젤 먼저 반짝 불이 켜지는 용두암이다.

대학생 때인 1969년 여름방학을 기해 제주에 사는 친구네를 왔었다.

어언 반세기도 넘은 얘기다

부산에서 도라지호를 타고 밤에 출항했는데 배는 새벽에야 제주항에 닿았다.

마중 나온 친구는 짐만 부려놓고 집에서 가까운 용두암부터 데리고 갔다.

검은 현무암 들쑥날쑥한 해안가 절벽에 기괴하게 솟구친 엄청 큰 바위덩이가 제주에 와서 처음 만난 풍경이었다.

승천하려는 용머리를 닮았대서 이름이 용두암이라는 설명이 그럴싸해서일까.

아니면 해풍을 쐬자 멀미기 가셔서 기분 좋아진 덕인지 이후 용두암은 제주와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결혼하고 다시 용두암을 찾아 뜬금없이 조랑말을 탄 생각은 나는데 퍽 싱거웠다는 느낌만 있다.

몇 차례 제주여행을 더 했으나 새로운 관광지가 속속 개발되며 패키지 코스에서 용두암은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다..




서귀포에 깃든 지 일곱 달 지나서야 겨우 용두암을 찾았다.

한라산 넘어 제주시에 여러 번 왔으나 갈 곳이 너무 여럿이라 순번에서 늘 밀려나곤 했다.

오늘도 근처에 온 김에 들렀지, 구태여 용두암만을 목적지 삼아 오기엔 상품성이 약한 편이다.

그만큼 새롭게 부상한 핫플이 섬 곳곳에 많이 포진했다는 반증이겠다.

대중교통편이 가까이 닿지 않는 장소인 데다 늦은 시각이라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두암이라기에 택시에서 내렸으나 잠시 어리둥절한 채 서있어야 했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생판 낯선 지역에 닿은 듯 생소하기만 한 바닷가 언덕.

외국 여행지에 처음 닿아도 이미 사진으로 충분히 친해진 터라 별로 낯설지가 않았다.

반면 주변을 휘둘러 봤으나 어딘가 익숙한듯한 기시감은커녕 한번도 본 적 없는 생경감이 당혹스럴 지경이었다.

무작정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용두암 글씨 새긴 바위가 보이고 전망대와 데크 층계가 드러났다.

계단이 끝나는 저 아래 질펀하게 펼쳐진 갯바위 건너편에 고개 치켜든 용두암, 위풍당당하던 전과는 달라 보였다.

그때는 바로 용두암 앞에까지 바짝 가서 바위를 만져도 보았는데 이젠 보호차원인 듯 완전히 격리된 상태.

멀어서 그런지 모르나 기대했던 만큼의 규모는 결코 아니었다.

특출 날 것도 없이 저처럼 작은 바위덩이였던가, 내 눈이 의심스럴 정도였다.

어릴 적 대단히 크고도 엄숙하게 느껴지던 국민학교 교정도 이제 와 새삼 바라보니 초라하기 그지없더니만.

외갓집 앞에 있던 저수지는 배를 띄울 만큼 너른 방죽이었는데 요새 들어선 형편없이 작은 연못에 불과하더니만.

하긴 웅장하게 여긴 창경궁이 그저 그런 건물이고 신기하던 정이품송이나 첨성대가 쫄아들어 초라해 보이더니만.

가까운 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국내선이라서일까, 장난감처럼 조그맣던 기체가 마침내 점으로 사라졌다.

구름층이 없어 일몰 극적이기보다 맹숭했지만 그래도 장엄낙조를 선사받은 오늘, 멋진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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