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어느 해안 절벽 동굴 속. 알타미라 동굴 벽화보다 더 오래된 그림이 발견됐다는 외신 보도와 함께 사진도 한장 실린 적이 있다. 흐릿한 윤곽이지만 야성 그대로의 숨소리가 들릴 듯 역동적인 포즈를 한 사슴도 있고 들소도 보인다. 붉게 드러난 선은 조악해 보이나 아무 뜻 없이 마구 그린 그림은 아닌 성싶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다 그림을 남겨 놓은 고대인. 그의 등 뒤에서는 화톳불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암벽에 어룽대는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동굴. 먼 데서 울부짖는 짐승 소리가 되울렸다 잦아들기도 했으리라. 아니, 그날은 하늘을 쩍쩍 가르는 푸른 번개 치며 폭풍우 거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 깊이 쌓인 날이었을지도. 체력 아껴야 할 그들은 시간을 허비하며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리 없는 그림을 왜 그렸던 것일까.
동기 유발에는 부여할만한 의미가 있거나 나름의 목적이 있게 마련. 물론 순수한 예술혼에서 나온 그림일 수도 있고 단순한 표현 욕구의 발로일 수도 있으리라. 또는 사냥꾼의 소망을 대입시킨 그림이거나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그렇게 나타냈을 수도 있겠다. 단지 무료해서 심심파적으로 헤적거린 예사로운 그림은 아닐 것 같다. 돌칼 하나로 사냥감과 맞서 사투 벌였으나 이제는 산야를 치달릴 수 없게 된 노옹이 반추하는 회억인가. 수렵생활을 하는 원시시대인 만치 사냥 나간 부족의 무사 귀환을 비는 샤먼의 주술적 행위인가. 그보다는 힘들여 잡은 포획물을 표시해 두는 일종의 기록화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제 흥에 겨워 콧노래 부르듯 그린 그림일 것도 같긴 하다. 아니면 허전하게 빈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서, 혹은 인간이 지닌 원초적 공간 공포증 때문일 것만 같다. 가설은 언제나 설왕설래, 그렇다 커니 이렇다 커니 견해와 주장이 분분해서 흥미롭기도.
고대인이 살던 동굴 속 벽면에도 이렇듯 장식이 있는데 우리 집의 사방 벽은 하얗게 빈 채로 휑뎅그렁하기만 했다. 빈 벽은 아무래도 너무 허전한 데다 마음 둘 곳도, 시선 둘 곳도 마땅치 않다. 벽뿐만이 아니었다. 집안 전체가 텅 비어있어 깔끔하기가 마치 절간 같았다. 지극히 간소하다 못해 조촐한 살림, 가구는 물론이고 그림 한 점 반듯한 게 있을 리 없었다. 굳이 이민이란 단어보다는 긴 여행길이라 이름 붙인 미국으로의 이주. 세 식구 사철 옷만 겨우 챙기고도 가방마다 터질 듯 탱탱했다. 짐스러운 세간살이는 엄두도 못 냈을뿐더러 책조차 부담이 돼 모두 눈 딱 감아버리고 훌훌히 비행기를 탔다. 사 년 전 일이다.
입주한 아파트에 기본적인 가전제품은 갖춰져 있었으나 아쉬운 것이 하나 둘 아니었다. 접시 세 개로부터 시작된 그릇 장만, 시늉만 낼뿐 구색이나 안목 따위는 무시하기로 했다. 곧 철수할 야전부대처럼 텐트 치고 잠시 지내듯 프라이 팬이 임시방편으로 냄비가 되고 돌멩이는 망치 역할을 하는 그런 생활. 뿐이랴. 차부터 마련한 다음 조명기구를 사 오기까지의 이틀간을 불 없이 지내고 나니 볼품없는 키다리 스탠드 불빛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밥상 대용으로 신문 깔고 몇 끼 식사를 해본 다음인지라 허술한 식탁마저 감지덕지했다. 아무리 최소한만 갖춘다 해도 필요한 거 투성이라 이것저것 날마다 사 나르기 바빴던 그때. 살아가는데 소용 닿는 물건이 그리 많을 줄이야.
썰렁하기 그지없는 집. 말소리는 되울렸고 불을 밝히면 벽면에 커다랗게 그림자가 들이찼다. 터무니없이 큰 그림자를 바라보노라면 그림자 연극을 바탕에 깔아 삶의 음영을 넌지시 일러 준 중국 영화 ‘인생’이 떠올랐다. 유전하는 생, 그 누구도 앞일은 미루어 예단할 수가 없는 법. 하늘이 의도한 바를, 이미 마련해 놓은 각본을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하랴. 잠시 머물다 가는 삶. 투명히 맑은 공기와 푸른 숲만 거느리고 단순 소박하게 살리라 했으나 나는 이미 문명화된 속물이었다. 여백의 미 운운했지만 병실같이 텅 빈 벽의 무미건조함에 질리기 시작했다. 무한대로 펼쳐진 하늘 역시 해와 달만으론 공간의 아득함을 메꿀 수 없어 낮에는 구름을 띄우고 밤에는 별을 내다 거는지도 모를 일.
수첩 갈피에 끼어 온 사진을 이쪽저쪽 벽에다 걸었다. 작은 액자에 넣은 가족사진만으로도 훈훈하게 차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 한결 사람 사는 집 같건만 요셉은 사진으로 숫제 도배를 하느냐며 핀잔했다. 마음 같아선 더 촘촘하게 걸고 싶던 사진이나 그쯤에서 멈추었다. 어느 일요일, 아카시아꽃 난분분 흩날리는 야드 세일장에서 눈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만났다.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 새가 창천을 나는 유화였다. 현대적 감각의 테두리를 한, 오십 호는 넉히 됨직한 그 큰 그림을 주저 없이 들고 왔다. 그림에 끌린 것은 순전히 힘찬 날갯짓 때문이었다. 그 새처럼 훨훨 나래 저어 고향으로 돌아갈 꿈만 꾼 나날들. 바람결 타고 높이높이 날아서 나는 가리라. 언어도 표정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정겨운 풍경 속으로.
드난살이 끝나는 날, 언제라도 가뿐히 떠날 수 있게 이 땅에 인연의 씨앗 같은 건 되도록 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차츰 애착 두고 키우는 화분이 하나 둘 늘게 됐다. 달동네 옹색한 뜨락에 그래도 한 뼘 남짓한 화단을 일구는 마음이나 엇비슷했다. 주어진 삶에 순명하며 이 자리에 뿌리내리려는 의중의 반영일까. 슬그머니 주저앉은 나쯤 개의치 않고 벽면의 푸른 새는 오늘도 태평양 가로지르는 나래짓 멈추지 않는다.
동굴에 그림을 남긴 옛적 사람들 또한 그 얼마 후, 절벽 기어올라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밭을 갈기 시작했을 것이다. -2004년 미주 중앙 뉴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