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Oct 24. 2024

졸지에 바보 된 이바구

어쩌다 호구가 됐고 졸지에 새됐다.


멍청이가 따로 없고 바보 되는 거 잠시 잠깐이다.


멀쩡히 눈 뜨고도 코 베어 가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니 입맛이 쓰다.


새로이 한국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어이없게도 생애 최초로 사기에 걸려들었다.


합리적 소비생활까지는 아니어도 알뜰하니 헛돈 같은 거 안 쓰는 편인데 어쩌다 애들 농간에 고스란히 속고 말았으니 내가 바보다.



동래 골목시장에서 양파와 고구마를 샀다.


검정 비닐봉다리를 흔들며 설렁설렁 걸어오는데 KT 대리점이 보였다.


그 앞을 지나는 중 한 젊은이가 전단지를 흔들며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 물었다.


마침 상담이 필요했던 터다.


KT 고객센터에 전화를 수차례 걸었으나 도대체 연결이 쉽지 않았는데 잘 됐다 싶었다.


이사를 하며 인터넷 설치비용과 모뎀료를 전화 요금에다 합산 부과해 고지서 없이 자동이체되도록 신청해 뒀었다.


당시는 코로나 정국이라 매달 은행 창구를 찾아가는 게 께름해서였다.


그러나 몇 달 지나면서 보니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액수 자체조차 둔감해지며 돈 드나듦의 감이 잡히지 않는 거였다.(원래 숫자에 약함)


앞으로는 매월 전화 요금과 인터넷 가입비를 별도 요금고지서로 만들어 발부해 달라는 주문을 하려던 차였다.



청년을 따라 매장 안에 들어가 의자에 앉게 됐다.


이때 나는 이미 반 이상 제 발로 여우굴에 빨려 들어갔던 것.


어수룩하니 맹해 보이는 인상은 아닌데 어쨌든 젊은이들 보기에는 어벙한 노인네, 걔네들한테 하릴없이 당했다.


전화 요금 상담은 제쳐두고 청년 둘이 정신 쏙 빠지게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더니 다짜고짜 새 전화기부터 꺼냈다.


꿈에조차 전화기를 바꿀 맘 같은 건 없는 사람한테 기기를 새로 바꾸면 전화 요금도 만원 정도 낮아진다고 미끼를 던졌다.


그럴 리가? 말도 되지 않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다기보다 휴대폰 가게마다 내건 공짜폰이란 단어가 아른거리며 그럴싸하게 들렸다.


손목을 끌어다 대다시피 하며 새 폰을 개봉하도록 유도했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나 그때 완강히 뿌리치며 생각 더 해보겠다고 냉정히 일어설걸....


어물어물 더듬대는 충청도 기질에다 기계치의 특성을 재빨리 간파한 듯 그들은 손쉬운 먹잇감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멀쩡히 잘 작동되고 있는 내 전화기(당시 미국에서 쓰던 폰으로 삼성 S8)의 유심 칩을 꺼내 새 전화기에 널름 끼웠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능란하게 구워삶는 말에 솔깃한 눈치를 보였으니 진작부터 스스로 사기가 끼어들 조건을 만들어 준 셈.


타인을 속이거나 착오를 일으키게 해 재물을 편취하거나 재산상 불법한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가 사기다.


사기죄가 다른 범죄에 비해 형량이 약한 이유는 대상의 사행심이 작동되면서 무르익었기에 상호 쌍방의 잘못이 인정되어서 이리라.


추호도 새 전화기로 바꿀 생각이 없다며 단호히 NO 하고 일어섰으면 됐을 텐데 우유부단하게 고개 끄덕이며 동조까지 해줬으니 공범자?


결코 아니다.


맹세컨대 전화기를 새로 구매할 의사가 전혀  없었으며 만일 그럴 생각이 눈곱만치라도 있었으면 어련히 기종 요모조모 비교검색해 봤을 테고.


무엇보다  갖고 있는 전화기가 손에 익어 사용하기 편리한 데다 화질도 그만하면 만족할 수준.


특별히 작품 사진 찍는 것도 아닌 단지 기록용으로 담는 사진일 따름이니까.


혹시 바꿀 뜻이 있었다면 최신형 울트라 모델로 바꾸면 바꿨지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LG를 택할 리도 만무다.(더더욱 괘씸한 점은  몇달 후 LG는 휴대폰에서 손을 털었다)



암튼 안경도 휴대하지 않아 청년이 짚어주는 대로 계약서에 사인해 주고 귀신에 홀린 듯 반쯤 얼이 빠진 채 새 전화기를 들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들의 기만술에 이렇게도 당하는구나 싶은 게 어이가 없어 비실비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 전화기는 모든 게 낯설고 불편했다.  


젤로 짜증 나기로는 미국에서 카톡 전화가 온 것도 모르고 패스한 일이며 내 블로그조차도 열어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전화기 사용법과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보험 사기가 그러하듯 전문 용어가 수두룩한 계약서 잔글씨 끝까지 꼼꼼스레 완독하고 백 프로 내용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론은 공짜로 새 핸드폰을 얻은 게 아니라 6개월 동안 2만 원의 단말기 할부금을 납부하도록 계산이 돼있다는 걸 까맣게 몰랐던 것.  



주말 지나 월요일 득달같이 쫓아가 따졌으나 당사자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사인한 이상 구매 취소는 불가란다.


위약금이건 손해배상금이건 물 테니 이따위 전화 내던져버리고 원래 전화기에 다시 유심칩을 넣어 개통시켜 내라니 그건 또 통신 법상 위법이라는 알쏭달쏭 묘한 답변으로 얼버무린다.


그러나 나름 알아본 바에 따르면  2020.08.10 이후 휴대폰 사기 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대처법이 명시되어 있다는 걸 들이댔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동전화 사기 피해 지원센터”로 피해 관련 신고 접수(www.cleanict.or.kr)를 하라는 것.


상담은 물론 직접적 금전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분쟁 조정과 소송 등 법적 구제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도 소비자 고발센터에 휴대폰 사기 관련 고발 사례가 폭주했다고 한다.


페이백을 지급하겠다거나 공짜 폰을 주겠다는 등의 조건을 내세워 단말기 장기 할부 구매를 유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는데.


해서 방통위에서는 이동전화 불공정행위 신고포상 제도까지 운용하며 불법행위를 고발하면 주는 일명 '폰파라치' 포상금을 다 주었다지.


이참에 폰파라치나 되어볼 생각까지는 없지만 정 더티하게 나오면 늙은 쥐 독 뚫는다듯 뜨건 맛 보여줄 심산이었다.



말장난으로 구워 삶는 폰팔이에게 만일 낚였다면 이에 대처할 길이 열려있으니, 피해 시 즉각 www.cleanict.or.kr로 신고 접수를 할 것. (어수룩해 보이는 노인네 경우이겠지만)


함정에 빠뜨려 바보로 만든 짓거리 괘씸해 끝까지 갈구려다 계속 신경 쓰기도 귀찮고 특히 손주 또래되는 나이의 젊은이를 상대로 법적 다툼하기 싫어 십이만 원짜리 전화기 교체했다 치기로 생각을 바꿨다.  


호객행위에 사기행각까지 하며 일선에 나서서 돈을 벌어야 하는 고단한 청춘에게 적선한 셈 치고 잊기로 하니 기분도 나아졌다.


다만 불법을 보고도 대충 눈 감으면 계속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게 되므로 공개적으로 뻘짓한 걸 알리는 게 나을 것 같아 포스팅을 다.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 그대로 이며 손재수가 들었으면 피해 갈 수가 없나 보다.


그나마 소액 피해인 걸 다행으로 여기며 이쯤에서 툭툭 마음 털어버리기로 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장안사에 스민 국화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