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Oct 24. 2024

장안사에 스민 국화향


국화 전시회가 열리는 천년 고찰 장안사를 찾았다.

솜씨껏 가꾼 국화분재의 고품격 멋과 고담한 국화향에 흥건히 취해 본 특별한 하루였다.

그랬다, 수목으로만 분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국화로 연출시킨 분재는 그만큼 특이했다.

분재 닮은 국화와의 만남은 처음이라서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거니와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도 독특해서 찬찬히 보고 또 봤다.




주말에 아들네가 장안사에서 열리는 국화 전시회에 가보자는 전화가 왔다.

분재 형식을 취해 아주 볼만하다기에 산속 길을 달려 오후 무렵 장안사에 닿았다.

부산 근교 장안사가 깃든 불광산 기슭은 단풍이 제법 무르익어 가는 중이었다.

아이들 어릴 적에 장안사 계곡에 놀러 와 종이컵에 다슬기를 담아와 어항에 넣어주었던 생각이 났다.  

밤새 다슬기는 어항 벽면을 기어 다니며 햇빛이 들어오는 유리 판에 번지던 이끼를 말끔 청소해 줬다.



농로 따라 평평하게 흘러내리던 냇물 줄기는 옛 그대로인데 절 입구의 불광교 대리석 아치는 영 생소했다.

부산 동북쪽 불광산 자락에 위치한 장안사는 문무대왕 13년에 원효스님이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웅전은 대한민국 보물 제1771호, 석조여래좌상은 보물 1824호이며 그 외 명부전 등 유형문화재 다수를 품고 있다.

많은 방문객이 있었지만 조촐한 가을 산사 분위기는 고즈넉했다.

통상 알고 있기로 국화 전시회라면 국화 품종별로 소담스러운 꽃을 피워냈거나 개성 있는 형태로 키운 국화분을 선발해 상을 줬다.

구경감이 별로 없던 초창기엔 큰 관심을 모았으나 사방에 볼거리가 늘어나자 인기는 점차 시들해졌다.

또한 일반 화원에서 정성 다해 가꾼 상품 국화와 별반 다를 게 없기에 가을 국화전 자체가 식상케 되었다.

고태 그윽한 장안사 뜰에서 열린 오상고절(傲霜孤節) 기개 서린 국화분재 전시회는 내 기대를 십분 만족시켜 주었다.



여태껏 보아온 국화전과는 차원이 다른 신선한 생경함, 분재 모형을 한 낯선 국화분들이 자못 신기했다.

아마도 내가 미국에서 스무 해 지내는 동안 한국의 국화전 양상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던 모양.

그 과정에서 국화가 괴석(석부작)과 고사목(목부작)을 만나 수형을 잡아가며 솜씨 부린 분재 양식으로 발전했던가보다.

상세히 알아보니 2012년에 열린 국제 농업박람회 이후 국화분재 방식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농업기술센터의 지도 아래 동호인 모임으로 만난 회원들끼리 봄부터 가을까지 심혈 기울여 가꿔낸 결실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표정으로 부처님 뜰 안에 모여 가을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국화향 스민 산사에서 격조 있게 즐길 수 있었던 충만한 시간 허락됐음에 감사 어이 다 표할지.....

작가의 이전글 변함없는 고전, 부석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