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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폭군 네로

by 무량화

네로가 왔다.

우유통도 챙겨 들고 왔다.

이리 쪼끄만 아기 고양이는 처음 본다.

내 안경집하고 비슷한 몸집이다.

오도카니 사리고 앉으면 크기가 내 주먹만 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이미 있음에도 손자는 기어이 제 냥이를 새로 분양받아왔다.

검은 고양이 같은데 윤기 나는 깜장이 아니라서인지 현재는 거의 짙은 밤색에 가깝다.

앞가슴에 하얀 턱받이를 하고 네 발 끝부분은 선명하니 희다.

아직 배내털 그대로라 길들지 않은 부스스한 터럭들이 꺼벙한 게 그냥 아기 티가 절로 난다.

오자마자 낯도 안 가리고 거실로 주방으로 발발발 돌아다닌다.

여린 생명이 아주 귀엽고 앙증스럽다.

얼른 안아보고 싶었다.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살짝 안으려는데 앙큼을 떨며 앞발로 냅다 손을 후려친다.

암팡진 반격에 반사적으로 멈칫, 뒤로 물러나버린다.

순간적으로 날린 쨉, 발톱으로 할퀸 데가 장미 가시에 찔린 듯 아리다.

햐아~뭐 요리도 발칙한 넘이 다 있노.

머더스데이라고 두 시간 운전해 달려온 딸내미.

꽃 선물에 곁들여 한나절 밝은 미소 안겨줄 기쁨조로 델꼬 온 냥이한테 외려 당했다.

괜히 상처뿐인 머더스데이 되지 않게 이후 섣불리 접근할 생각일랑 말기로 한다.

이번엔 주변을 맴돌며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순둥이 강아지,

인정사정 볼 거 없이 귀싸대기 무차별 공격을 당한다.

새로운 놀잇감과 놀고 싶어 괜히 멍멍~천방지축 날뛰다가 다짜고짜 얻어터진다.

사이좋게 놀 생각은커녕 얼쩡대기만 해도 역시 앞발로 안면을 연타 가격하며 표독을 떤다.

강아지가 워낙 순하기 망정이지 한 입 거리도 아닌 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분다.

저보다 수십 배나 덩치 큰 강아지건만 겁도 없이 포달스럽게 덤비는 냥이.

꼬리를 바짝 등위로 추켜올리고는 근처에 오면 하시라도 반격할 자세다.

똥그란 눈을 깜빡대지도 않으면서 팽팽하니 수염을 뻗댄 채 전투태세를 풀지 않는 녀석.

물색없이 반기며 친해볼 거라고 앞에서 알짱거리는 강아지에게 캬~고르릉~작은 경고음도 보낸다.

제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악질을 해대더니 귀찮은 듯 카우치 위로 올라가 쪼그리고 앉는다.

짝사랑 지치지도 않는지 강아지는 여전히 애소하듯 깨갱거리며 카우치 위만 바라본다,

강아지뿐만 아니라 까탈 피우는 넘을 따라다니며 온 하루 부지런히 사진 찍어대는 나도 냥이 바보가 될 기질 농후하다.ㅋ

여리여리 어린 네로는 완전 폭군,

아무래도 전제군주로의 화려한 등극은 시간문제겠다.

밤이 되어 소소한 물품들 정리해서 냥이가 제집으로 돌아가버리자 강아지는 그만 시무룩, 맥이 탁 풀려버렸다.

많이 웃었던 하루라 나도 슬슬 피곤이 몰려왔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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