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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화순곶자왈에도 가을 기별이
by
무량화
Oct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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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과는 완연 달라진 곶자왈 숲길.
높직한 데서 바라보면 울창하던 숲이 몸살이라도 앓고 일어난 듯 수척해진 티 완연하네.
빛바래가는 숲에 아무 무게감 없이 고요히 지는 낙엽, 묵연하게 물드는 담쟁이덩굴.
한 숲에서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을 동시에 관찰할 수 곳이 화순곶자왈이지.
이는 상록활엽수림과 낙엽활엽수림들이 공존한다는 뜻.
예덕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이나무 등 낙엽수림들은 마른 잎 떨구며 어느새 자기 정화에 들어갔다네.
호르르 사선 그으며 나비처럼 내리는 마른 이파리, 어깨 스치고 살풋 지는 낙엽 밟으며 숲길을 걷는다네.
묵묵히 뒷짐 쥐고 걷는다네.
으름덩굴
이럴 때 언어란 군더더기, 아무 말도 필요치가 않지.
성큼성큼 독일 병정처럼 걷는 게 아니라 아주 느릿느릿 걸어야 제격이지.
그래야 사색의 샘물 고여 맑은 물줄기 졸졸 흐를 수가 있거든.
시상은 성급히 조급증 내면 낼수록 부정이라도 타듯 멀어지고 만다네.
허심히 빈 마음 되어 비었다는 그 생각조차도 여의고 무념무상의 경계로 들어선다는 게 쉽지는 않지.
호올로 오로지 혼자가 되어야 한다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 자연의 일부로 숲에 스며들려면 절대고요부터 익혀야 하는데 누항사에 길든 터수에 과욕이겠지.
더구나 오래 번잡 즐기며 몇몇 바쁜 잡사에 취해서 덩더꿍 들떠 지낸 일상이었지 않나.
시원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려면 흐려진 물 맑아지도록 기다려야 하는 법.
순환 코스를 두어 번 천천히 돌아본다네.
한 시간 여가 소요되는 길이지.
흙길, 야자매트길, 계단길, 데크길 걷노라면 딱따구리를 비롯 뭇 새소리 들리고 낮은 들꽃과 마주치기도 하지.
툭 툭 발치에 떨어지는 도토리.
창호에 달빛 스미듯 자연과 하나로 동화되는 미묘한 낌새가 들 즈음이면 느낌 또한 동시에 충만해지지.
세속의 잡다한
구속으
로부터의 초월, 더 높은 데로 향하고자 하는 욕망이 사그라들면 매임이 사라지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그건 자유로움이고 그래서 무한 편안하고 그때 아리아리한 행복감도 느끼게 된다네.
가을은 참으로 묘한 계절, 비로소 본연의 나로 돌아갈 듯도 하지 뭔가.
제주 생태계의 허파인 곶자왈이라네.
201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수상한 화순곶자왈 생태탐방숲길.
곶자왈은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라네.
따라서 울퉁불퉁 거친 돌길이나 탐방로마다 매트를 깔아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폭신한 쿠션 길이지.
더구나 신작로처럼 멋없이 일직선으로 뚫린 길이 아니라 구불텅 휘돌거나 살푼 틀어 앉은 오솔길 은근 운치롭지.
이 길은 사람만 다니는 길이 아니라 때로는 소떼 이동로가 되기도 하고 노루도 지나는 길.
어느 땐 매미 허물도 떨어져 있고 사슴벌레 기어가거나 도마뱀이 스륵 스치기도 하지.
축축한 숲이라 비암도 흔하다는데 휴우~ 천만다행히 그간 한 번도 정나미 떨어질 일은 생기지 않았다네
.
사실 사진 찍을 때마다 발치 조심하고 숲길에 마른 낙엽 내리는 소리 바스락만 거려도 잠깐 긴장하는 데 얼마나 다행인지.
앞으로 기온이 더 떨어지면 동면에 들어갈 테니 그 걱정은 사라질 거라네.
그늘진 숲이 그리도 좋더니만 벌써 햇살 골라 걸을 만큼 선들해진 날씨, 하루 다르게 단풍 물들고 낙엽도 겹 쌓이겠지.
요즘 갈수록 더 운치
깊어지는 낙엽길 열려 시구 써내리고 싶게도 하고 하다못해 이브 몽탕의 '고엽' 노래 읊조려보고 싶게 한다네.
물론 둘러싼 상록수림이야 여전 청청하지만 말일세.
우거진 수풀 사이 으름덩굴에 농익어 벌어진 으름도 달려있고 비단실로 덫 놓고 기다리는 무당거미도 만나는 길.
시월도 후반부로
치달리면 한잎 두잎 지던 낙엽 우수수 쏟아지며 사방으로 휘날리겠지.
그때를 위해 '시월의 마지막 밤' 노래를 휘파람으로 연습해 봐야겠네, 미리 노력 좀 해보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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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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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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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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