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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가오리연
by
무량화
Oct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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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지난 다음날 점심 무렵, 갑작스레 하늘 어두워지더니 부옇게 소나기가 몰려왔다.
우르릉 쾅! 우렛소리도 요란하게 들렸다.
해변에서 연휴를 즐기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바닷가.
한 시간도 안 돼 언제 그랬냐 싶게 소낙비 그치며 날씨가 개자 푸른 하늘이 나타났다.
다시 사람들이 해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핑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급히 내닫던 서퍼들은 바다로 신나게 뛰어들었다.
젊은 그들의 함성을 가까이서 들어보려 설렁설렁 모래톱으로 향했다.
결결이 부드럽게 휘감기는 해풍은 산뜻 상큼했다
그때 묘기 부리며 창공을 유영하는 가오리연이 눈에 띄었다.
삼각편대를 이룬 가오리연은 긴 꼬리 나붓대며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른 하늘에서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문득, 십 수년 전의 샌디에이고 바닷가가 생각났다
그때 요셉과 나는 동부에서 서부로 딸내미를 만나러 왔었고 딸은 우리를 라이드해 라호야 비치며 미션베이 등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날 태평양 바닷가
발보아
공원 매점에서 연을 산 우리는 강풍을 만나자 신이 나서 때는 이때다 싶어 연을 띄웠다.
연은 거침없이 쑥쑥 높이높이 올랐다.
그 옆에서 우릴 부러운 듯 바라보던 한 아이.
좀 전까
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던 그 아이는 제 연과 우리 연을 차례로 올려다보며 공원 잔디밭에 하냥 서있었다.
기류를 잘못 타는 바람에
아이의
연은
곤두박질치며 내리 꽂히다가 나무에 휘감기고 말았으니까.
아이에게 내 연을 내밀자 아이는 노탱큐, 목소리 아주 단호했다.
결국
아이는 멋진
제 연을 포기하고는 시무룩하니 돌아섰을 것이었다.
그 아이의 표정이 생각나자 어릴 적 동산에 올라 날리던 연이 떠올랐다.
대나무 가느다란 살에 창호지 붙여 만든 하얀 연은 소박해서일까.
벽공에서 춤추는 가오리에서는 추억 속의 종이 연이 떠오르기보다 색색의 비행운 이끌며 곡예를 펼치는 화려한 에어쇼가 연상됐다.
한동안 고개를 한껏 젖힌 채 연의 매혹적인 춤사위에 몰입해 있다 보니 목이 다 뻐근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높이높이 멀리멀리 날아올라 거칠 거 없이 자유롭게 춤을 추거라 가오리연아.
우리네 갈등 깊은 세상사며 욕심과 아집에 막혀 비좁아진 의식세계도, 저 연처럼 어디에도 매임 없이 무엇에도 걸림 없이 맘껏 자유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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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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