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이야기 6
(커버는 내가 찍은 박물관 전경, 지금 봐도 정말 잘 찍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하는 내셔널 갤러리 전을 다녀왔다.
개장했을 때부터 가고 싶었는데, 마침 시간이 생겨 급하게 예매를 하고 혼자 다녀왔다.
생각해 보니 혼자 전시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지만 전시를 보러 자주 가는 타입은 아니다.
유럽에 있을 때 많이 보고 오기도 했고, 요즘 우리나라에서 하는 전시들은
미디어아트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 이상하게 끌리지가 않았다.
이번 내셔널 갤러리 전은 정말 작품 위주의 전시인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는데, 음..
총평을 미리 해보자면,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오디오 가이드에 집중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줄을 서서 (ex, 반고흐) 봐야 할 정도로 많았다.
정숙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사진촬영이 금지된 것도 아니라서
그림들이 다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면서 봤다.
그러나 전시 자체의 구성은 정말 좋았다.
서양사를 복기할 수 있을 정도로 짜임새 있고 설명도 잘 되어 있었다.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라는 이름에 맞게
화가의 시선이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 갔는지,
시간을 따라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좋았던 작품들은 남겨놓고 싶다.
이 그림은 사소페라토라는 화가의 작품이다.
제목은 '기도하는 성모'
라파엘로풍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하는데,
사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입장하자마자
정말로 눈을 사로잡은 그림이었다.
울트라마린이라고 불리는 푸른색 염료는
아주 비싸면서도 보존력이 높아 귀한 그림에만
쓰였다고 한다.
천의 질감 표현력, 배경과 대조되어 온화하면서도
신성한 분위기에 보자마자 마음이 찡하고 울렸다.
종교가 없는데도 그림에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잊고 싶지 않은 작품.
나는 사실 벨라스케스, 카라바조와 같은 강렬한 화가들의 팬은 아니다. 이상적인 비율로 그리스 신화를 다루는 르네상스 미술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보고는 카라바조에게 관심이 생겼다. 어떤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순간을 '포착'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인간의 감정을 포착한 데에서 오는 생동감, 그리고 그림 곳곳에 숨어있는 의미들.
약간 억지스러워 보이는 자세가 그림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 물병 표현은 정말... 보고 또 봐도 신기했다.
오래된 그림들은 프레임도 낡은 경우가 많다. 프레임의 낡은 느낌과 그림이 주는 생생함이 대조되어 더 인상 깊었다.
레드 보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고, 이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도 정말 많았을 것 같다.
나는 영국 작가 구획에서는 윌리엄 터너의 그림을 가장 보고 싶었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소년이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에는 잘 안 보이지만 소년의 눈에 비친 빛줄기가 정말 예뻤다.
손끝 하나라도 대면 안될 것 같은 디테일한 묘사와
레드벨벳의 질감 디테일, 실제로는 굉장히 큰 그림이라 압도되는 스케일. 소년이 실제 인물이며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더해지면서 너무 아름다워 슬픈 느낌을 준다.
언제 봐도 좋은 윌리엄 터너의 그림.
영국에 이렇게 좋은 화가들이 많은지 몰랐다.
대학교 4학년 때 들은 영국 역사 수업 교수님께서
영국 미술관에서 오래 일하시던 분이셨다.
그래서 항상 역사와 예술을 연결 지어서 설명해 주셨고, 그 덕에 윌리엄 터너나 존 컨스터블 같은 좋은 화가들, 전통 있는 갤러리들을 알게 되었다.
낭만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나는 빛을 담은 인상주의가 이런 시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빛과 풍경, 파도와 바람을 묘사한 그의 독특한 화풍은 자연을 담겠다는 거장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 외에도 푸생, 반고흐, 모네 등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있었고, 반갑게 관람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울렸던 글.
풍경은 하루 만에 당신에게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내 연못의 선경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팔레트를 잡았다.
아마도 나는 꽃 덕분에 화가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클로드 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