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타쿠는

어릴 적 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

by 무상


나는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많이 보지 않고 간혹 유명한 작품들만 보는데

일반 영화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느낀다.


애니메이션의 전혀 연관 없는 장면을 보더라도

나의 어릴 적 구석구석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도서관 앞 사물함 위에 있던 매미라던지

유치원 때 학예 발표회를 위해 무대 뒤 대기실에서 스펀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장면이라던가

개나리핀 봄에 유모차에는 동생이 타고 있고 엄마 옆에서 같이 걷던 장면이라던가

정말 그리 특별하지 않은 장면인데 그때가 머리에서 재생된다.


어릴 적부터 이어져있는 애니메이션이라 그런 걸까

시간을 건너 무언가를 느끼는 기분이다.


정신을 차리면 현실의 상황이 보인다.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어있는 아빠의 모습

거울에 비친 낯선 이의 얼굴은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는 엄마의 모습이라 놀라거나

어렴풋 기억나는 나의 얼굴은

마주 본 거울 속 모습과는 멀어 보이게 느껴진다.


애니 하나를 보고 나의 삶의 곳곳에 연결되어 정신이 오다니면

뭔가 너무 슬프다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지나가는 것을 너무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이라 그런 걸까

시간을 멈추고 싶지만 멈춰지지가 않는다.

사랑하는 것들이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토록 죽었으면 좋겠다 말했던 모든 것들이 소멸하고 있음을 느끼면

너무 어렸음을

나도 그들도

어쩔 수 없었구나 바라본다.


그러면 지금이 너무 소중해진다.

더 쥘 수 없음도 깨닫는다.


비로소 어릴 적 꿈꾸던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 느낌을 마주 보는 느낌에

오타쿠가 조금은 그런 점에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뭐, 이것이 그들이 빠져있는 이유는 아닐지 몰라도 말이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진짜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표현도, 꿈도, 버킷리스트들도 말이다.


내가 죽기 전에는 하지 못해 아쉬워 미련의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너무 즐거웠음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려도 미소를 짓고 떠나고 싶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 삶에서

나는 오타쿠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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