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색 괜찮으시겠어요?
남편과 인테리어 대표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물었다.
역전세난의 여파로 신혼집에 다시 들어가게 된 우리는 '간단히 도배와 장판만 바꾸자'는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신혼집은 이제 10년을 바라보는지라 그때의 그 집이 아니었다.
결국 부엌과 화장실을 뜯어내는 작업을 하면서 일이 커졌다.
추가 비용을 없애기 위해 그저 무난하게요~ 보통으로요~ 를 번복하다가
부엌에서 다용도실로 가는 문을 두고 브레이크가 걸렸다.
화이트 우드 톤 주방에 레몬색 문이 웬 말이냐며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는 두 남성들.
"좀.... 아닌가요?"
안 될 건 없지만 굳이 왜?라는 표정.
나는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데 취약한데 이러면 곤란하다.
"아, 이런 색조합은 처음인데. 정말 조립할까요?"
이번에는 냉장고다. 화이트-레몬-다크그레이 색 배합에 설치기사님이 고개를 갸웃하셨다.
처음 해 보는 색 조합인데 이상할 수도 있다며 미리 경고하신 것이다.
이 정도면 레몬색은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
레몬색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가 미뤄두면 아무도 하지 않는 반복되는 일 속에서
나만의 '커렌시아' 같은 색이 필요했다.
*시작이란 문은 늘 안에서 열린다
변화와 시작은 늘 안에서 시작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처음으로 내 의견을 굽히지 않고 공사를 시작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냉장고 설치도 그대로 하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우려했던 튀어 보일까 걱정했던 빛깔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없었으면 심심할 정도.
조금은 불안할지라도 일단 해보는, 나의 취향을 해맑게 이야기하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자연스럽게 강물 흐르듯 변하게 된 것인가?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같은 사람인데.
이거야 말로 나이 드는 일인가...
나이가 든다는 것이 예컨대 마트로시카처럼
수많은 자신이 더해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더해져 온 자신을
하나하나 열였을 때 나오는
가장 작은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 마스다 미리 <누구나의 인생> 중에서
*밖으로 열리는 문이 아닌
늘 안으로만 열리는 문
시작이라는 문
- 박준, <계절산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