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의 기록
가톨릭 잡지 월간 <참 소중한 당신>에 기고했던 글들을 차곡차곡 다시 글 곳간에 넣어두려 합니다.
에세이의 시작은 <경향수필>이라는 종교 잡지에 글을 싣게 되면서 였다.
일기 같은 내 글을 누가 재미있어할까? 망설여졌는데 편하게 생각하라는 선배의 말에
'종교잡지니까 부족한 부분은 신앙의 힘(?)으로 봐주시겠지...'라는 용기가 생겨
설 연휴 친척과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 스트레스로 대폭발이 일어난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글을 보신 편집자분에게 연락이 와서 <참 소중한 당신>이라는 따뜻한 잡지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몇 달 만에 호로록~ 국수 면발을 먹는 것처럼 몰아쳐서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고
공항에서 일하는 남편을 따라 영종도라는 동네에
둥지를 막 틀던 참이었다.
수줍게 기고에 응하고 부족한 글을 일 년 동안 보내면서 나의 신혼과 기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연재는 2017년 4월부터였지만 계절과 발을 맞추고 싶어서 8월 글부터 꺼내 들었다.
“낮의 파리와 밤의 파리 중 고르라는 건…
영원한 숙제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대사처럼 나에게 파리는 로망의 도시다. 1년 늦은 신혼여행지로 파리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짝이는 에펠탑, 본연의 재료를 살린 다양한 요리와 달콤한 디저트, 푹신하고 하얀 침대!
멋진 파리지앵 라이프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려 했던 우리의 여행 플랜은 첫날 숙소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빌린 아파트는 사진과 완전 다른 집이었다. 작아도 너무 작은 데다 소파를 가장한 접이식 침대라니! 정직하지 않은 집주인에게 화가 났다. 그게 다 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듯 물때가 선명한 살림도구와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나오는 요술 수건까지! 한참을 재채기와 기침을 반복하다 남편과 나는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내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아무리 아껴도 신혼여행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는데…’ 실망과 자책에 나도 모르게 입이 삐죽 나오고
그 얼굴을 본 신랑도 덩달아 의기소침해졌다. 다행히 시차 덕에 기절하듯 잠들어버려서
‘이건 꿈일 거야’ 잠꼬대하듯 세뇌시키며 파리에서 첫 날을 보냈다.
새소리 때문이었는지 여기가 파리라는 사실 때문이었는지, 푹 자고 일어난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찬찬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작지만 세로로 길게 낸 창문으로 보는 푸른 넝쿨 잎. 방문 뒤에 걸어놓은 작은 우산, 피크닉용 담요,
웰컴 드링크라고 쓰고 알록달록 배치한 캡슐커피부터 여행자의 흥을 돋울 와인까지.
낡았지만 곳곳에 살뜰히 배려한 주인의 마음 씀이 담긴 집이었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남편의 자는 모습마저 귀엽기 그지없다. 이제 막 생을 시작한 신생아처럼
쌕쌕~ 소리를 내며 세상 근심 없이 자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평소에 잘하지 않는 아침 감사기도를
올리며 파리에서의 여행은 시작됐다.
사진으로만 보던 에펠탑의 큰 체격에 놀라고, 저녁 무렵 ‘노을과 함께 보는 에펠탑’이 주는 아름다운 평화와 ‘센 강’에 비친 불빛이 고흐의 그림처럼 얼마나 깊고 외롭게 반짝이는지~ 만끽했다. 미술 시간에 후루룩 넘겨보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엄지발가락이 살짝 들려있는 디테일에 감탄하며! 파리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손녀와 손잡고 걷는 할머니의 반대쪽 손에 들려있는 담배 한 개비, 겨울인지 여름인지 모를 자신만의 온도로 입은 옷차림, 차가운 듯하면서도 ‘봉쥬~ 마담!’ 하며 웃을 땐 기분까지 좋아지는 얼굴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어떻게 보여 질까’ 신경 쓰지 않고 무언가 자신만이 품은 단단한 행복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삼일 정도 지나서일까? 일정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지하철역에 내리면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역에서 나와 주욱~ 늘어선 과일이 보이는 동네 마트, 이른 저녁을 시작하는 카페와 꽃집, 서점이 보이고 코너를 돌면 집에 다 온 것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집이다!” 하며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안심한다. 진짜 우리 집도 아닌 데다 첫날 그렇게나 실망했던 집이었는데 말이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여행 온 곳이 동네가 되고,
마음을 닫고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여행은 어쩌면 그곳의 삶을 받아들이고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당신이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되는 거예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은 원래 그런 거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현실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여인에게 주인공이 한 말이 와닿았다.
진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 이제 돌아가면…’하고 걱정부터 앞서는 내 마음을 여행의 고단함과 불편함 속에서 느낀 감사함으로 다시 채워본다. 내 마음 안의 마른 샘에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 부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 벌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
희망할 수 없을 때조차 희망하신 분이
예수님 아닌가. 주님의 시선으로 희망하며 사는 것.
어쩌면 여행자의 시선으로 오늘도
감사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