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미 Aug 09. 2021

공항상담소의 비밀

<참 소중한 당신> 5월 원고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내 곁에는 온통 그대 뿐/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을 겸허하게 하네/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지난 달, 남편과 보기 잘했다 싶은 영화 <셰이프 워터: 사랑의 모양> 중 마지막 대사이다. 영화 곳곳에는 똑같은 모양 하나 없는 사람들의 사랑의 무늬가 존재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딱 일 년이 되어가는 초보 새댁인 내가 이렇게 사랑에 대해 집착(?) 아닌 집착하게 된 이유는 결혼을 앞둔 친구, 동생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았던 요즘 때문이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공항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 터라, 일상에 지친 친구들이 가끔 기분전환 겸 공항으로 찾아온다.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러 간 공항은 반가운 안부도 잠시, 제법 묵직한 결혼 에 대한 고민들이 이어지면서 ’공항상담소’가 된다. 결혼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보기에는 1년 남짓 연애 후, 후루룩~ 국수 흡입하듯이 갑작스럽게 결혼하게 된 내가 신기한 것이다. 


“언니는 언제 이 사람이다! 하고 결정했어요?”, “너는 결혼 준비할 때 안 싸웠어?" 

"원래 이렇게 해야하는 게 많니?”

아... 맞다. 나도 어떻게 결혼할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낼 수 있는지 궁금해 했었다. 그리고 결혼 준비에 ‘해야 할 일’들이 그렇게 많이 포함된 줄 몰랐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경험해보니

“믿음, 소망, 사랑 중 정말 제일은 사랑이더라!” 

“결혼준비는 오롯이 ‘결혼식’을 위한 준비가 많아. 두 사람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 싸우지 않고, 전우애가 샘솟더라.” 정도로 용기를 심어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다. 


“사랑인지 모르겠고, 다 이렇게 결혼한다는데...”

“집에서 이만한 조건 만나기 힘들다고... 나도  나이 들면 볼 거 없고, 내 성질을 죽이라고 해서...”

여기서 내 마음에 노란불이 들어온다. ‘겪어보니 그놈이 그놈이더라. 사는 게 별거 없더라.’ 식으로 딸을 설득하는 부모님의 말씀에 서운함이 폭발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 아닌가! 나도 결혼 닦달을 오랫동안 받기는 했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서로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는지, 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유난 떨지 말고 나이 들기 전에 결혼해!'하는 말은 듣는 이에게 폭력으로 느껴진다.

  

무엇이 이렇게 친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시기를 놓치면 후회한다는 결혼 종용도 문제이지만 내 생각에는 ‘독립’의 문제인 것 같다. 나또한 본가에서 나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언니네 집에 머무르면서 온전히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진 못했다. 남자친구가 결혼 전에 독립을 먼저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나랑 결혼할 마음이 없는 건가’하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으로부터, 남자친구로부터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정서적으로 독립했던 그 시기가 내가 자연스럽게 결혼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언니는 결혼하면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나? 원론적인 것 같지만... 사랑.”

“아, 역시 언니는 감성적인 스타일이네요.” 

사랑이 관계 안에서 얼마가 강력한지 경험했다면 절대 감성적이지 않다. 만약 사랑하는 상대가 마침 부자였는데, 결혼 후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다. 그럼 상대를 버릴 것인가?


사랑은 어쩌면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하는 말씀처럼 나에게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다. 내가 하느님을 아프게 하고, 돌아선다 해도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고 안아주시는 분이다. 그렇다면 나도 사랑으로 대해야한다. 결혼을 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의심이 들거나 불안할 때는 잠깐 멈추고 서로 마음을 나누어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청첩장을 찍어서, 결혼식이 코앞이라... 이런 이유가 아닌,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걸어갈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바라기만 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지를 말이다. 이때는 부모님과 주변사람의 훈수는 잠시 닫아둬도 좋을 것 같다. 친한 동생은 성경구절을 이용해 이런 청첩장 문구를 만들었다.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이
사랑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사랑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실천해야하는.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어쩌면, 오늘도 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