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총새의 고백
식은땀이 났다.
소파에 기대어 쪽잠을 자고 아침 일찍 서울 가는 지하철을 탔다.
중간중간 신호가 올 때마다 불안이 더해졌다. 어지럽고 매스꺼웠다.
각오를 했지만 적응이 안 되는 검사였다. 검사 3일 전부터 고춧가루, 깨, 건더기가 있는
음식이 제한되었다. 먹지 말라니 더 먹고 싶었던 샐러드, 견과류에 안 먹던 강냉이까지
입에 무언가를 넣고 싶었다.
검사 전날은 한 마리 물총새가 되어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우리 끝나고 바삭한 거 와구와구 입에 넣고 씹자."
"근처 리스트야. 끝나고 놀자~"
건강을 확인받고 놀 생각이었던 우리는 예상과는 달리
파리해진 얼굴로 시킨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갈 길이 먼 나는 지하철에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졸았다.
"있잖아. 힘을 빼야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 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음 날이었다.
잔뜩 힘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것들. 꽉꽉 채웠던 것들을 비워내는 잠깐의 시간들이
나에게 반성과 아찔한 순간으로 남았다.
생각했던 서울 나들이는 비루한 물총새의 짧은 방문으로 끝났지만
결과에 큰 이상이 없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4월은 크고 작은 집안의 소식들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그중 할머니의 입원이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는데,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가 자신의 분을 삭이지 못하고
주저앉다가 고관절이 부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는 곧 백세를 앞두고 있다. 연세에 비해 몸이 건강한 편이셔서 수술은 잘 됐지만
선망 증상이 심해져 요양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삶에 있어 힘을 잔뜩 주는 것만큼이나 허무한 것이 있을까...
할머니가 다치시게 된 배경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 지금 날 무시해?"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화를 내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하셨다.
남들에게는 너그러우셨지만 가족들에게 늘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셨다.
가끔 집에 내려가면 기운 없지만 중얼거리시며 하시는 말씀 중에
'내가 얼마나 똑똑했는데 내가 얼마나 얼마나...'
열심히 살아오신 할머니의 인생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규칙적이고 단정한 할머니셨다. 치매라는 병 때문에 두드러지긴 했지만
나이가 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두려워졌다.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 수면제를 투여해도 잠드시지 못하고
몸부림치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꿈속이신 듯 인생에서 만났던 가족, 친구, 이웃들에게
한 명 한 명 인사하시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간병을 하던 고모가 전하시길, 고향 집 마당에서 큰 잔치를 베푸는 것 같다고 했다.
"꽃비가 내리고 떡을 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데 어렸을 때 만난 이웃, 가족들, 손자, 손녀까지
다 얘기하시더라. 너랑 루아에게도 고맙다고 꼭 안아주시는 것 같았어.
그제야 숨을 후~ 내뱉으시고 잠이 드셨어."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도 못했다.
연년생인 남동생에게 엄마젖을 뺏긴 나는 할머니의 빈젖을 물었다.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 할머니와 방을 같이 썼었다. 할머니는 새벽 기도를 하시느라
늘 새벽 4시면 일어나셔서 촛불을 켜고 두꺼운 성서를 펼치고 기도하셨다.
잠버릇이 심했던 어린 나는 할머니를 몇 번이고 발로 찼다.
발바닥에 자극을 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아침마다 방망이로 발바닥을 두드리셨다.
그 기억을 잊은 채 동생에게 다 내어주는 나를 보며 "착하다. 순하다" 칭찬했던 할머니를 미워했다.
엄마에게 아들 낳기를 강요한 할머니를 욕했다.
할머니가 힘을 빼시는 순간 나는 부끄러워졌다.
사람들은 '가벼움'이 '무거움'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치 먹구름이 성을 무너뜨릴 듯 덮쳐올 때 가느다란 햇빛이
재난을 와해시키는 듯하다.
-위화,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