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가족여행을 마치고
지난주 내내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했다.
작아진 아이 옷을 정리하고 냉장고에 맛이 든 김치를 잘라서 소분했다.
이런 거 언니한테 잘 어울리겠다. 엄마는 이런 스타일 좋아하지.
화장품과 옷가지들, 조카들의 선물을 챙기니 캐리어의 텅 빈 입이 꽉 채워진다.
올해로 두 번째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처음 아빠가 여행 이야기를 꺼내셨을 땐
일단 번잡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남동생을 끝으로 시집, 장가를 완료한 우리들이 각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자
16명이라는 대가족이 되었고, 다 같이 모이기는 쉽지 않았다.
사는 곳도 제각각에 2세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충족시킬 여행지와
숙소를 고르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 50주년을 맞아 거창하게 계획된 동남아 여행은
결국 몇 가족만 다녀오게 됐고, 아쉬운 대로 몇 달 후 아빠 생신 무렵 대부도로 1박 가족여행을 떠났다.
직장인들 워크숍 성지인 대부도의 펜션에는 투박하지만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마당,
작은 온수풀, 노래방, 바베큐장이 있었다.
제법 또래가 맞는 조카들은 온수풀에 까르르 웃으며 놀기도 하고,
어른들은 산책과 포켓볼을 하며 한가로이 보내다가 저녁에 통돼지 구이를 시켜 만찬을 즐겼다.
모두 미미하게 있는 외향적인 성향을 끌어 모아
펜션 안에 있는 노래방에서 소소한 생일 이벤트를 했다.
"이제는 우리가 만날 날보다 헤어질 날이 더 가까이 오고 있지.
젊었을 때는 가진 게 없다는 생각에 일만 했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가장 큰 재산은 너희들, 우리 손자손녀들이란 생각이 든다."
울컥하는 마음을 꾹 누르고 진심으로 결혼 50주년을 축하했다.
과묵한 막내사위가 가장 먼저 노래방 마이크를 잡은 건 그때였다.
아내인 나보다 가족들이 더 놀랐다. 막내사위의 재롱으로 늦도록 취한 밤이었다.
이후 가족여행은 일 년에 한 번, 아빠의 생일 무렵인 봄과 여름 사이에 모이기로 결정됐다.
날씨가 좋아지는 계절인 만큼 미리 숙소를 잡아야 했는데 인원이 많아 쉽지 않았다.
여행지와 위치로 멀미가 날 무렵, K-장녀 큰언니의 결단력으로 태안 바닷가 근처 펜션으로 숙소를 잡았다.
미리미리 트렁크를 채워놓은 탓에 어려움 없이 출발했다.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하고 루아의 플레이리스트인 슈팅스타 티니핑 오프닝 곡을 틀었다.
오랜만에 나들이었다. 사촌언니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들뜬 아이와 창문을 활짝 열고 노래를 열창하는데
뭔가 허전함이 밀려왔다. 노래는 절정을 향하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이 공포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간식으로 준비한 삶은 달걀.
그 냄비를 인덕션 타이머를 맞추고 제대로 꺼졌는지 확인하지 않은 거다.
물론 꺼져있겠지만. 꺼졌겠지? 혹시 제대로 꺼졌을까?
식은땀이 났다.
차는 이미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진입했다. 남편에게 말하면 한숨 지을 거다.
누군가 우리 집에 들어가 확인해야지 이 악몽은 끝날 수 있다.
과연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을까...
창피함을 무릅쓰고 제일 가까웠던 이웃에게 연락했다. 역시나 공감해 주며 확인할 순 있는데 이미 출근한 상태. 오후에나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하원 버스 정류장에서 인사만 하던 사이인 엄마에게 연락했다.
어색한 사이지만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며 적당한 분이 없으면 자신의 친구라도 출동시킨다 했다.
더... 더 없나...
단지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사실 이사 와서 한 두 명 알게 된 친구 외에는
의도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했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익명으로 나를 숨긴 채
퍼뜩 한 사람이 생각났다. 입주민 카페에서 만난 동료. 단지 안에 살고 있는 지인으로
부탁했을 때 상황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최근 오며 가며 안부만 나누었는데
같은 (계약이 만료된) 실업자의 입장을 토로했던 적이 있었다.
"저는 더해요. 에어컨 켜놓고 휴가 가서 이런 부탁 많이 했어요. 걱정 말아요 언니."
이 한 줄의 메시지에 화장실 급한 사람이 휴게소에 다녀온 듯한 홀가분이랄까
민망하지만 감사함이 식은땀을 멈춰주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작은 선물을 전하며 생각했다.
높은 아파트 빌딩에 나를 숨기기 바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 중 알게 된 엄마들의 호의에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의도적으로 관계를 피한 적도 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나의 천사가 되어줄지 모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거다.
휴게소에서 파는 동그랗고 포실한 알감자처럼 푹신한 마음으로 태안에 도착했다.
먹거리는 뭐든 최소한만 준비하자는 다짐이 있었는데
막상 식구들을 만나니 또 나눌 반찬과 안주거리가 한가득이다.
어쩔 수 없다. 번잡해도 다음 날 아침 남은 과일과 김치, 과자를 나누고 집에 오면
그걸 또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일 년에 한 번인데 뭘... 이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역시 뭐든 처음이 제일 어렵다.
숫기 없는 우리 가족이 여행을 시작한 것도
아직 손님처럼 구는 올케도
점점 우리는 편안하게 자리 잡을 거다.
모닥불을 피우고 선물 뽑기와 퀴즈 시간을 가졌다.
할아버지를 좀 더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1회 할아버지고사' 퀴즈를 만들어갔다.
20개가 넘게 준비한 크고 작은 선물이 동이 났다.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는 순간에도
숯불 향이 미미하게 흐른다.
가족은 참...
귀찮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