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읽어주세요.
어느 시절
어떤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돌을 편지처럼 주고받았대*
마음이 가벼울 땐
작은 조약돌을
무거울 땐
그보단 조금 더 큰 돌멩이를
봉투도
우표도 없이
직접 우편배달부 되어
돌의 크기뿐만 아니라
돌의 모양이나 색
돌에 낀 이끼나
표면에 붙은 분홍 꽃잎
죽은 곤충의 투명한 날개 같은 것은
마음을 전하기에 퍽 아름답고 소중한 비유
나를 읽어 주세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들리도록 말하기 위해
돌을 고르고 또 고르는 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자연스레 시가 써지곤 해
너라면
그 돌들을 어떤 말로 옮겨 적을까?
나라면
만약에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쓴다면
돌의 얼굴에 팬 보조개가 보이니?
나는 오늘도 너를 조금 보고 싶어 했단다
가을바람이 앉은 조약돌을 보내니 받아주렴
-<도넛을 나누는 기분> 중 김현의 시 '돌 옮겨 적기'
*강기원, <돌 편지>, <지느러미 달린 책> (문학동네, 2018) 참고
시험지를 일찍 풀고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던 그 짧은 고요의 시간.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정적 속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공상에 잠길 수 있던 그때.
책상 위에 팔을 포개 만든 동그란 우물에 얼굴을 담그고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눈을 뜨곤 했다.
몸은 교실 안에 붙박여 있을지언정 정신은 어디로든 갈 수 있었으니까.
작가의 시작노트에 쓰인 문장이다.
그런 날이 있다.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잠시 마음에게 우선순위를 둔다.
널브러져 있던 마음속 돌멩이들의 무게를 줄이고 차례로 정리해 두는 시간.
나를 읽어 주세요.
시를 읽다가 눈이 계속 머물러서 다음 문장으로 넘기는데 한참이 걸렸다.
한 친구가 떠올랐다.
- 내 글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 나도 처음에 나를 위해 썼어.
근데 생각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놀랐어.
- 회사를 다니면 대리, 과장, 부장 이렇게 내가 성장하는 게 보이잖아.
근데 난 늘 제자리 같아.
- 지금 회사가 주는 간판을 때면 그 사람이 여전히 과장, 대표일까?
너는 너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잖아. 회사원을 부러워하지 마.
아이를 낳고 수시로 나를 짓누르는 돌덩이가 있었다.
'현명한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무게를 줄여보고자 혼자만의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돌아보자면 글쓰기에 대한 특출 난 재능은 없었다.
기껏해야 글과 관련된 상은 일기상 몇 번 탄 정도.
고등학교 내내 서기를 맡아서 친구들의 100일을 맞이 축하 메시지를 많이 쓰긴 했다.
100원과 함께. 가끔 글씨가 마음에 든다며 연애편지
대필로 가끔 했다.
문학을 좋아했지만 그 흔한 팬소설조차 쓰지 않았으므로
‘작가’라는 직업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 괴로웠던 고2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땅거미가 진 놀이터에서
그네를 자주 탔다. 친구는 다니고 싶은 대학과 학과가 뚜렷했다.
광고학도가 목표였기에 그녀의 다이어리는 늘 빼곡히 미래에 대한 기대와 준비를 적었다
반면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걸.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허공에 발만 구르고 있었다.
- 너는 뭐 할 때가 좋은데?
- 글쎄… 공연 보는 거? 좋아하는 연예인이 라디오에 나오면 잘 기억했다가
친구들에게 재밌게 얘기해 줄 때? MBC 테마게임 봤어? 그런 스토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좋아하는 건 많았지만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직업은 없었다.
- 그럼 제일 좋아하는 건 이야기네. 네가 만들어 보면 어때?
-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 왜? 안 해 봤잖아.
그런 분야를 배우는 학과를 정하면 되지. 공연 예술이나 문예 창작 같은.
친구의 그 말에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밤의 공기, 친구의 말과 같이 불어오던 밤바람.
삐거덕 소리가 들리던 그네의 움직임 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막막하고, 답답한 날이면 그날을 떠올린다.
내 것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묵묵히 바라보던 나의 마음이
스스로에게는 두고두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그저 무언가를 바라보던 나 자신을 기억하는 것,
문득 이것이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