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헤세도 그랬대

숏츠에 중독된 다음날 아침

by 알미


흥미로운 주제도 아닌데 흐르는 쇼츠 화면을 멈추지 못하고 손가락을

휘~ 휘~ 올리고 또 올리다가. 알고리즘이 정해준 대로 흘러 흘러 이번엔

유튜브 영상을 한없이 보고 있다. 뇌는 멈췄지만 고통은 없는 기분.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한때 작가 구인 사이트에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 충원 글이 많았다. 유튜브도 잘 안 보고 나랑은 호흡이 다른 것 같다고

외면하면서도 일감이 떨어질 때 즈음 방송밥 먹던 것을 방패 삼아 아르바이트를 가끔 했었다.

한 채널의 편집과 자막을 봐주기도 하고 기획을 하기도 했다.

역시나 큰 재미는 따라가지 못했다. 자신이 없어 더 가지 못했다.


뒤늦게 '찰스엔터'라는 20대 여성 유튜버의 스위스 브이로그를 보았다.

그러다가 월간 데이트라는 모태솔로 데이트를 보고... 에필로그에 담긴

스위스에서 만난 첼로를 연주하는 오빠의 음악을 들어봤다.

친구 가족의 여행에 객식구로 매년 함께 하는 그녀의 여행기를 보고, 흘러 흘러 퇴사 브이로그를 봤다.

순간순간 20대의 내 모습은 어땠나, 지금 젊은이들은 이렇구나 하면서 반나절 여행 다녀온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왜 브이로그를 찍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흘러가는 영상을 보는지

일을 할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섭외와 촬영, 편집과 원고 마감,

시청률 회의에 벗어나고서야 알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나이 드는 것을 전혀 다르게 상상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다시 기다림, 질문, 불안함, 그리고 충복보다 동경이 더 많다.

보리수꽃이 향기를 풍기고 방랑하는 도제들, 꽃을 따는 여인들,

아이들과 연인들이 모두 어떤 법칙을 따르는 듯 보이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것만 같다.

오직 나만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냥 이것만 안다. 뛰노는 아이들의 계산 없는 즐거움도

방랑자들의 무심한 스쳐 지나감도

연인들의 후덥지근한 도취도 꽃 따는 여인들의 조심스러운 수집욕도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내 안에서 외치는 삶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

설사 내가 그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다 해도,

그리고 그것이 나를 즐거운 길거리에서

점점 더 멀리 어둡고 불확실한 것으로 데려간다 해도

그것을 따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르만 헤세

헤아,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중에서



대문호 헤세도 그랬단다.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성장하고 나아가는 것 같이 보였단다.

오직 나만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주말 오후, 아이를 키즈카페에 넣어 놓고 남편과 모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둥둥둥~ 드럼의 묵직한 베이스가 자꾸 내 가슴을 울려댄다.

얼마만의 '사운드 체킹'인가!

소싯적 밴드 동아리에서 저녁 공연을 위해

낮부터 장비를 나르고 준비하던 것이 떠올라 새삼 두근거렸다.


문학과 음악은 '나의 운명'같은 것이라 여겼지만

재능이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나는 남몰래 짝사랑하는 소녀처럼 소심하게 좋아했다고나 할까.

막상 판을 깔아주는 공연이나 방송에서는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는 선배들의 심부름꾼이자 연습생,

코러스로 궂은일을 했다.(쟤는 나가겠지~라는 마음이었단다)

2학년 본 공연에서는 동기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 장르와 목소리가 맞지 않아

천덕꾸러기였다.(동기들은 쓰레쉬메탈을 좋아했다)

정기 공연과 학교 주변의 행사도 따라다니며 재밌는 일이 많았다.(나중에 특집으로 써야지!)

드디어 3학년 때 모두를 군대에 보내고

다소 착해진 복학생 선배들과 하고 싶은 노래만 부르며 평화롭게 졸업했다.


그 후 동아리 때 들었던 쇠느낌 가득한 음악은 듣기도 싫을 줄 알았는데

모던 락의 전성기여서인지 공연과 페스티벌을 즐기는 조용한 밴드걸이 되었다.


그 덕분인지 소망하던 뮤지션의 공연 위주였던 음악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적도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첫 방송을 담당했던 밴드가 '안녕 바다'였다.

애국가 시청률의 음악프로그램이었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만드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작가이자 성덕으로서 새 앨범을 알리는 프롤로그 영상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공연이 잘 끝나고 뮤지션이 준 사인 시디를 가보처럼 모셔두고 있다.




키즈 카페를 다녀온 아이가 먼저 무대 1열을 제안한다.

하... 엄마 밴드 출신이거든? 진정한 호응을 보여주지!

아~ 기타 리프를 라이브로 들어본 지가 얼마만인가.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헤드뱅잉 하는 뮤지션 오빠(라고 부르고 싶다)를 보며

그 시절 패션과 선배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일렁인다.


지나온 시간에서 길을 잃어도 좋을 것만 같은 날이었다.

헤세도 그랬다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

가을이기도 하고.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혜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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