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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Mar 24. 2024

장보기 쿠폰으로 받은 것

박완서, <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으면서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나는 자주 공상을 한다. 아기를 재우기 위해 꼼짝없이 자는 척을 할 때 나의 주특기가 빛을 발한다.  어렸을 때 주로 했던 공상은 내 방 꾸미기였다.  매일 아침 신문에 끼어 오던 가구 전단지와 아파트 도면이 그려진 광고지를 모아 상상 속에만 있는 내 방을 꾸며보았다. 천창이 있는 다락방, 화장대, 옷장, 벙커침대 등등 그곳에서 나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대가족 셋째 딸에게 방이 생기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노트에 도면을 그려가며 내 공간을 만들어갔다. 그 방에서 우리 반 누구처럼 공부도 잘하고 예쁜 그 아이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소풍 전 날 찜해둔 그 새 옷을 옷걸이에 걸어보는 상상도 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야금야금 보며 힐링했던 박완서 선생님의 책, <사랑이 무게로 안 느끼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70년대에 살림을 하고 글을 쓰던 선생님의 글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바로 어제 나를 보는 것 같아 반갑고 위안이 되었다. 



나는 돌아누워서 부자가 되는 공상을 요모조모 해 본다. 

부자가 되는 공상은 아무리 해도 싫증이 안 나고

할수록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한겨울에도 반소매 차림으로 지낼 수 있는 스팀 난방의 양옥, 

현대적인 정갈한 부엌, 

일류 음악회의 3천 원짜리 좌석을

예사롭게 예약할 수 있는 소비 생활 등등


나는 내 이런 공상이 모피나 보석에까지

도달하기 전에 용케 자제를 한다. 

문득 남편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내가 남편에게 바라고 있는 것과의 

엄청난 간극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래서 초겨울 밤은 실제의 기온보다 

조금쯤 더 춥다.


- 박완서, <틈> 1971년



 지난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것저것 담다 보면 금액이 꽤 나오는 보라색 마켓에서 8천 원 쿠폰이 왔길래

큰 맘먹고 10만 원이 조금 모자라는 장을 봤다.(8천 원 쿠폰으로 가장 합리적인 장이었다 자부하면서!)

다음 날 토요일 아침, 도착했다는 문 앞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꿈 일거야.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를 자책했다. 

두 달 전 떠나 온 서울 집 주소로 냉장 냉동의 온갖 식품이 담긴 박스 두 개를 남의 집으로 보낸 거다. 고객센터는 7시부터 문자로만 문의할 수 있는데 눈이 떠진 건 새벽 4시였다. 3시간을 덜덜 떨며 보냈다. 왜 평소 잘 사지도 않던 것까지 넣은 날에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남편이 알면 뭐라고 할까. 물건을 받고 얼마나 황당할까. 연락처도 없는데 동네 엄마들을 깨워 나눔 해야 하나. 자책과 부끄러움의 시간이 지나고 7시가 되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측에서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차가운 미인에게 거절당한 고백남이 이런 기분이려나. 자괴감이 하늘을 찌르고 똑같은 실수만 하지 말자 다짐하며 집주소를 수정했다. 차를 마시고 마음을 다잡아봐도 기운이 나질 않았다. 


"혹시 택배 시키셨어요?"

점심때 즈음이었나?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마음 깊은 서랍에 꽁꽁 넣어두려는 찰나, 아래층에 살던 이웃의 톡이 왔다. 사진은 내가 본 장보기 박스였다. 


무사히 이사했고 잘 지내고 있냐고. 안부 문자를 하고 싶었는데 이런 일로 인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안하고 민망해서 사정얘기를 하고 짐이 안된다면 보시고 필요한 거 쓰시라 했더니 

"비싼 보라색 장보기잖아요." 극구 사양하며 지금 밖이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더 미안해했다. 


 아랫집 이웃의 첫 만남은 맥주를 사가는 엘리베이터에서였다. 

"혹시 불금이신가요?"

젊은 부부의 남편이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덩달아 기분 좋아져서 

"네. 그런데 요즘 아기가 새벽에 자주 울어서 많이 죄송해요."

했더니 잠귀가 어두운 건지 전혀 안 들린다고 신경 쓰지 말라며 웃어 보였다. 

"다음엔 저희도 초대해 주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쯤 들린 목소리. 젊은 남편의 싱그러움이 귀여웠다. 경계심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그의 아내는 오며 가며 인사만 했었는데 아기 우는 거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를 하며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었다.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흰 피부에 시원시원한 눈매, 임신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늘씬한 몸매가 부러웠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두어 번 차를 마셨다. 1년 터울의 아기가 태어나면서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작아진 옷이나 장난감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좋은 마음으로 주는 나눔이래도 가족이나 친한 사이가 아니니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너무 좋죠!" 편한 동생처럼 호탕하게 대해 준 이웃이었다. 

이사 갈 즈음 전세금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을 때도 변호사 이웃을 소개해 준 것도 다 그녀였다. 돌이켜 보니 은인 같은 그녀다.  


그날 밤, 외출에서 돌아온 후 늦게 택배를 열어본 그녀에게 사진이 도착했다. 

오 마이 갓. 포장된 아이스팩이 찢어져 박스가 젖어있었다. 게다가 휴일이어서 택배 수거는 월요일에나 할 수 있었다. 정말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는 거였는데 그녀의 톡에 나는 또 녹아버렸다.  


"아이스팩이 찢어져있었어요. 컴플레인하면 너무 진상일까요? 

쿠폰이라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보내요."



화요일 오후 택배는 도착했고 음식은 상하지 않았다. 또 젖을까 비닐봉지로 꼼꼼히 포장한 마음만 남았다. 

그녀에게 커피쿠폰을 보내며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감사함을 전했다. 

(쿠폰비) 8천 원을 아끼려다 택배비 8천 원을 쓰고, 작은 선물까지 하게 됐지만 아쉽지 않았다. 

몇 만 원 부럽지 않은 '이웃쿠폰'을 받았으니까. 




올 1년 내내 나는 그렇게 살았다.

물건값이 오른다는 정보에 어둡고, 오르는 걸 보면 괜히 오기가 나고,

그래서 물가쯤은 초월한 사람처럼 있다가 오른 다음에 가슴 아파하면서, 

물가 당국을 원망하면서, 상인을 존경하면서, 

오른 값으로 사 먹고, 사 쓰고 살았던 것이다. 


...


나는 그걸 1500원이나 주고 샀다. 꽃 장수는 친절하게도 집에까지 갖다주고,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일찍 피어 버릴 테니 사나흘에 한 번씩만 주라고 일러 줬다. 

내가 사 온 고추를 보고 이웃 부인들은 근수를 좀 속은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다시 달아보진 않았다. 

나는 그날 꼭 900원을 번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꼭지 따서 잘 말려서 빻아다가 항아리에 넣어 놓으니 김장을 반쯤은 한 것 같다. 

김장을 해 넣고 나면 나의 만추국이 필테지. 

나는 이래저래 흐뭇했다. 



나는 결코 세월을 토해 낼 수는 없으리란 걸, 

다만 잊을 수 있을 뿐이란 걸 안다. 

내 눈가에 나이테를 하나 남기고 올해는 갈 테고, 

올해의 괴로움은 잊혀질 것이다. 

나는 내 망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만추국을 갖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뭐, 포인세티아라든가 하는 서투른 서양 이름이 아닌, 

이름도 의젓한 만추국이 화려하게 만개할 즈음

나는 내 한 해를 보내고 그리고 잊어버릴 것이다. 


- <고추와 만추국>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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