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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Aug 06. 2024

서글픔이 일렁이는 그 얼굴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찻잎이 물에 가라앉듯 서서히 잔상이 오래 남는 영화를 좋아한다.

끝날 것 같지 않는 폭염과 아이의 여름방학 속에서

반나절의 자유 시간에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영화를 본 후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타코야키 부심이 있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를 찾아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 마무리처럼 생맥주 한잔을 마셨다.

(마침 우리나라가 20여 년 만에 배드민턴 금메달을 따게 되어

맥주 한 잔을 서비스로 주신... 여러모로 퍼펙트 데이)


 

 그는 '도쿄 토일렛'이라고 쓰여있는 작업복을 입고 매일 아침,

17개 다른 테마를 지닌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다.

그의 루틴은 이렇다.

매일 새벽 낙엽을 쓰는 빗자루 소리에 잠을 깬다

-단출한 이부자리와 간밤에 본 책을 가뿐히 정리

-순서대로 정리된 옷가지와 소지품을 챙기고 대문을 연다.

-새벽 공기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캔커피를 뽑는다.

카세트테이프로 드라이브 비지엠을 고른 후, 캔커피를 한 모금.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기 위해 시동을 켜고 일터로 향한다.


청소를 하는데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다.

무심하지도 고단하지도 않아 보이는.

다만 열심히 일할 뿐이란 표정.


영화 중반까지 올드팝 속 주인공은 대사도 불필요한 동작도 없다.

매일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단순하고 단정한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감정이 올라올 때 멈칫하게 된다.

그가 어떤 사연으로 청소 일을 택했는지 중요하지 않지만

인생의 굴곡으로 인해 조금 다른 세계로 자신을 옮긴 것만은 분명하다.


일을 마친 후 한차례 씻어내는 목욕시간,

공원에서 바라보는 코모레비,

휴일에 들러 읽을 책을 고르고

선술집에 들르는 행복도 놓지 않는다.

 

코모레비

;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그것은 오직 한 번,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은 '코모레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직 한 번뿐인 지금 이 순간.

몇 번이고 그의 하루 루틴이 이어지는데

(내 느낌일 수 있지만) 지루하다거나 힘겨움보다는

매일이 다른 날처럼 표정에 그늘이 없다.

마치 여행자가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보는 사람처럼.

그렇다고 달뜬 표정도 해맑은 긍정도 아니다.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청소부라는 편견에 부딪힐 때도 아이에게 찡긋 웃어 보일 뿐.

건너편의 세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 잃은 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

여동생을 한 번 꼭 안아줄 때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되는데

이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때는

마지막 영화의 엔딩 씬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 롱테이크로 길게 이어진 장면.

그다지 슬프지 않은 씬이었을 텐데...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 눈물 콧물을 줄줄 흘렀다.   

같은 마음일지 모르겠으나 <Feeling Good> 음악이 흐르고

촉촉해진 눈으로 운전하는 그의 얼굴에서

인생의 서글픔이 일렁였달까.


각본에 적혀 있던 지문은

"백미러에 비친 히라야마의 눈에 눈물이 보인다

하지만 결코 슬퍼 보이진 않는다."


배우는 이 장면을 연기할 때

니나 시몬의 노래 <Feeling Good> 가사가 감정을 일깨워줬다고 한다.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It’s a new life for me,

 I’m feeling good.”




영화에서 주인공과 조카가 대화를 나누다 선문답처럼 반복하는 대사가 있었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바라는 그것이 되어 살아가는 것.

찰나의 코모레비, 마지막 장면에서의 히라야마 씨의 얼굴이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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