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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Jan 30. 2024

전세대란 속에 피어난 장미

지독한 그때의 기록

<문장과 순간> 중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승리의 시가 끝나고 노동의 산문이 시작되었다.

로맨스가 있는 연애가 '시'라면 생활로 들어선 결혼은 '산문'

또한 결혼은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이기도 해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좋은 일이 있을 땐
평생 처음 보는 것처럼


힘든 일이 생기면 다들 겪는 걸 우리도 겪는구나 하면 되고요.

와인 한 잔 마시면서 잔을 부딪힐 때

"와, 진짜 좋은 순간이다!" 감탄하면서,

마치 처음 와인을 마시듯 살면 됩니다.


                                                     -박웅현,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브런치에 일기 같은 부끄러운 글을 쓸 때마다 느껴지는 게 있다. 나는 평안한 날에도 점 같은 불안을 찾아내고야 마는 지독한 버릇이 있는 것 같다. 이렇다 할 싸움도 없는데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 서로 묻지 않고 생활만 같이 하고 있는 느낌.

남편의 휴직기간이 막바지에 다가간다. 휴직하고 한 달은 여행도 다니고 평일 낮에 데이트하는 시간이 좋았는데 잠깐 뿐이었다. 휴직기간과 가계는 반비례하는 것이어서 생활비 아끼기 모드롤 들어가면서 마음 편한 외출 또한 줄어들었다. 모든 행복이 돈에 있지 않지만 심리적인 여유는 경제적인 부분이 많이 차지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우리는 대출이자에 허덕이다가 서울살이를 접기로 결정했다. 세 달 전부터 이사를 통보하고 내용 증명(효력은 없으나 나중에 증거가 됨)도 보냈다. 호의적이었던 집주인이 점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자, 우리 부부는 급격히 서로 말이 없어져 갔다. 새벽까지 침대와 소파를 번갈아가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갔다.


급기야 집주인과의 통화 중에 언성이 높아졌는데 남편의 무심한 태도에 크게 절망했었다. 집주인의 듣다 듣다 참을 수 없어서

"다른 것들 다 빼고 집주인으로서의 약속만 이행하세요." 했더니

"집값이 떨어졌는데 어쩌라고요!"

집주인이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례한 집주인의 태도에 가만히 있다가 뺨을 맞은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도 나고 서러움이 복받쳤다. 화를 내어야 할 곳은 집주인인데 나는 통화를 함께 듣고 있던 남편의 태도를 비난했다.

"아내가 공격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어? 기분 나쁘지도 았아?"

"내가 볼 땐 둘이 똑같은데?"


순간 내 귀를 의심하고 그를 쳐다보았지만 남편은 좀처럼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 살람이다.

 서운함이 폭발해서 맨발로 집을 나와 집 앞 시냇가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건 없는지 변호사 상담을 하며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미친 사람처럼 전화를 두 시간 넘게 하면서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혹시나 전세사기나 전세금반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고 싶다.

조심한다고 해도 당할 수 있으니 자신을 자책하지 말자. 변호사가 말하듯 약속을 할 때 앞일을 예견하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전셋집을 구할 때, 등기부등본에서 집에 저당 잡힌 것이 없는지, 집주인의 신원은 확실한지, 세금 채무는 없는지 꼼꼼히 알아두길 바란다. (이 모든 것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갑자기 집값이 폭락해서 전세금이 집의 매매가 보다 낮아져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남편도 나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 앞에서 서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앞으로 어떤 나쁜 일이 있을지 예측해 보고 하나라도 당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 반면, 남편은 상대의 반응에 동요하지 말고 그때그때 하나씩 대응하자는 주의였다.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상대방이 나의 상황을 쥐고 흔드는 거였구나. 전세금을 돌려줄 날을 11월 중순에서 말일로,  12월로, 다시 1월 초로 미루는 집주인을 보고 이사도 못 가고 아이 유치원도 결정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는 이 상황에 화가 나는 거였다. 집주인이 또 어떤 카드를 내밀지 몰라

남편에게 '이것도 물어봤어?', 이 서류 챙겼어?, 이렇게 말을 했어야지 하면서 남편에게 체크를 하다 보니 남편도  참다못해.

"못 믿겠으면 네가 하든지."에서

"집주인이랑 똑같은데"라는 막말까지 나온 것이다.


숨을 고르고 다른 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자."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하게 말로 해주면 좋을 것을. 참 내 맘대로 안 되는 남의 편이다!!) 그리고 하나 더. 배려는 여기까지. 우리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자! 는 결론이 났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다른 대출을 알아보고, 심리적 범퍼를 마련했고, 나는 이상적인 변호사를 찾으려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렸다. 이 과정에서 말 한마디라도 걱정해 주는 가족, 친구들의 위로와 응원도 감사했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뜻밖의 도움이었다. 아랫집에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있어 가끔 아이의 작아진 옷이나 장난감을 나눔 하면서 차 한잔 마시곤 했었는데,  우리 사정을 듣고 이웃 중에 변호사가 있다고 연락처를 주었다. 인사만 나누던 이웃인데도 며칠 동안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준 덕분에 적합한 변호사를 찾을 수 있었다.  가끔 맥주를 담은 봉투를 보고 "언제 같이 한잔 하시죠." 했던 이웃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줄 줄이야.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생이다. 감사한 마음에 서로 집초대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변호사를 만나서 상담(물론 유료임)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인상적인 말은

"전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과 약속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합니다.

집주인이 나쁜 게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내 재산을 손해 보기 싫은 마음이죠. 내 돈을 되찾는데 들이는 돈과 시간이 억울하고 힘드시겠지만 '되찾은 게' 아니라 '받아낸다'라고 마음을 전환시키세요."


변호사가 말하는 집주인들 대부분은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전세금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중 충격적이었던 말은 '나쁘지 않은 집주인'이라는 말이다. 다행히 돈을 돌려줄 만한 재산이 있고, '임차권등기명령신청'(집의 권한 1순위에 대한 법적조치)에 동의준 것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집주인'이라는 것이다. 세입자가 들어와야 돌려줘야 한다는 식의 막무가내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데도 말이다.


혹시나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전세금 반환에 문제를 겪고 있다면 소송 전에 두 가지는 꼭 체크해야 한다.

1. 임차권등기신청 후 완료가 되기 전까지 절대 이사를 가지 말 것.

   (완료 후에는 이사를 가도 집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고, 오히려 집을 비워준 것이 소송에 유리함)

2. 등기부등본에서 집에 대한 근저당 설정을 확인할 것.

   (우리보다 먼저 집을 가져갈 사람이 있는지, 채권이나 채무가 있는지 알 수 있음)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으면 재산 가치가 떨어져 세입자가 후순위가 된다.


소송을 시작하면 우리에게 유리해질 것을 알고 나니 오히려 남편과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혼법원 건물을 지나며 '내친김에 이혼상담도 받을까'라는 농담도 주고받고, 오전 내내 긴장했던 마음을 위로하듯

법조인들이 회식으로 갈 만한 중국요리 집에서 술과 요리를 마시며 전의를 다졌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이 이런 때를 말하는 건가 부다. 우리도 겪어낸다 하며.


새해가 시작되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안타깝게도 전세금의 일부는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덜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약속한 날짜에 받지 못하면 우리는 되찾는 것이 아닌 '받아낼 것'이고, 약소하지만 집주인에게 벌금도 부과할 만한 카드도 쥐고 있다. (소송으로 들어가면 또 어이없는 사실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에 풀기로)

두 달째 유치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세금 못 받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나는 새해 마흔을 넘겼고, 소송을 준비해 본 여자가 되었다. 모두 백수가 된 채로 긴 방학을 보내고 있지만 또 언제 이렇게 셋이 똘똘 뭉친 방학을 지내보겠나. 아이가 가장 예쁜 5살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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