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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미 Jul 24. 2024

그릇장 속 방학

 방학이 주는 부담감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 

그날들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고독입니다. 

그릇장 속에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그릇처럼 고독했죠.

 그래서, 이미 그렇지 않은 지금, 

그때의 그 고독은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릇장 속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서늘한 시간, 

그 어슴푸레함.

 나는 그곳에서 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자신과 자신 이외의 것이 이어질 때, 세계는 갑자기 열립니다. 

이건 정말이에요. 그러니 그전까지는 가만히 있는 것도 괜찮아요. 

다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몸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비가 내리면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고양이털과 개털의 감촉을 구별할 수 있도록. 

암염과 천일염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스스로 느낄 것.

 그릇장에서 나왔을 때, 그것들이 기본 체력이 됩니다.


-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학은

그릇장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무얼 하는 기간이 아니라

하지 않지만 그릇장에서 나왔을 때를 대비하는 기간.


"엄마, 왜 가을은 방학이 없어?"

방학식을 하고 온 아이가 물었다. 


- 글쎄... 쉬는 날이 많아서?

- 가을은 날씨가 좋아서 매일 방학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난 어릴 때조차도 '방학'이란 단어에서

해방감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학창 시절엔 적당히 학원을 가고 

주말에 이따금씩 가족여행을 가긴 했는데

막히는 도로가 싫은 아빠의 성향으로 

새벽 4시 출발 오후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돌아와서

비몽사몽 했던 기억이 난다. 

"방학 때 뭐 할 거야?"

"방학 때 어디 가? 생활계획표 만들었어?"

동그라미를 시간별로 나눠 꼭꼭 채워 그렸던 그림처럼

빈칸이 생기면 허투루 시간을 보낸 느낌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대학 1학년까지도 '방학'이란 단어에 얼음!처럼 굳어있었던 것 같다.


봉사를 떠나거나 해외 연수를 가는 친구들

신나게 연애를 하거나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주춤했다. 


좋아했던 만화에서는

방학 때 짝사랑 하던 아이가 있는 무리와

우연히 기차를 타고 여행까지 되고

생각지도 못한 고백을 받기도 하던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썸도 일어나지 않았고

(훗날 파란만장한 연애사가 펼쳐지니 모태솔로들이여 돈워리)

지원한 아르바이트는 모두 떨어져서 

도서관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돌아보니 믿기진 않지만 나의 자양분이 된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정해준 방학 말고 쉼을 즐긴 건 

일을 하고 난 다음부터다. 

뜨거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끝나거나. 쉬고 싶을  때 

동그란 시간 계획표를 그려 채우는 것이 아닌

쓱쓱 동그라미 속 일정을 지우고

어디론가 떠나거나

몇 달간 몸을 잔뜩 웅크리는 기간이

내겐 진정한 방학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여름방학'하면 영화나 소설에서 접한

이탈리아 소도시의 복숭아빛 햇빛이 쏟아지는

수영장이 생각나긴 한다. (먹고 수영하고 먹고 수영하는 기쁨이란)


 이번 여름은 정말로 테두리 밖에 나가지 않는 나날이 될 것 같다. 

주말 한정 알바와 며칠 어린이집 등하원 픽업 일정이 있어

어디에 다녀오기도 무리다. 이번 방학의 모토는 

'어디로 떠나고 싶진 않지만 집에 머문 상태로 떠나는' 것이다. 

유체이탈이 아닌 이상 어떻게 가능하지 싶겠지만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읽고 확실하게 느꼈다. 

그동안의 나는 책으로 쉬고 있었구나. 


명절이 되면 큰집 며느리였던 엄마를 도와 

아침부터 제사음식을 하고 부침개 기름냄새에 벗어날 즈음 차례로 친척들이 왔다. 

당시 나는 말 수가 적고 혼자 있고 싶은 여자아이였다. 

장난기 많은 사촌오빠의 농담도 싫었고, 공부 잘하는 친척 동생도 서먹해지던 나이.

나의 유일한 방학의 장소는 동생 방 옆에 붙어있던 작은 베란다였다. 

읽지 않는 전집이며 오래된 만화책을 쌓아둔 곳인데 낡은 1인용 소파가 있었다. 

친척 어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는 베란다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그곳은 유일하게 내가 내가 아니었던 곳이었다. 부잣집의 소공녀가 되기도 하고 

용기 있는 전사이기도 했다. 


그릇장 속 쓰이지 않은 그릇의 웅크린 시간.

무엇을 이룬 방학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더위에 무사하고 스스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면 된다. 

나의 방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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