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보물 1호
인생이 너무 심각해서
글을 쓸 수가 없다.
한때 인생은 더 쉬웠고,
종종 즐거웠고,
그래서 글쓰기 역시 심각해 보이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지금 인생은 쉽지 않고, 너무 심각해졌으며,
그에 비해 글쓰기가 조금 우습게 보인다.
-리디아 데이비스, <못해 그리고 안 할 거야>
11월은 혹독했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아주 가까이에, 나의 가족에게 일어났다.
몇 달 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불안과 불만, 설움 같은 것들이
먼지처럼 가볍고 하찮았다.
첫 조카가 세상을 떠났다.
이 한 문장을 한 달 동안이나 썼다 지웠다.
아직 말로는 내뱉지 못했다. 말로 하면 진짜가 되어버릴 것 같다.
꿈에서 얼핏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깨어나보니 꿈이 아니었다.
국과수에서는 이유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한 달이면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는데
아직도 조카의 방엔 불이 켜져 있다.
어느 날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달려가는 동안에도,
자는 듯 누워있는 조카의 차가운 손을 만질 때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실신한 언니를 일으키고
향이 꺼질까 조카의 사진을 바라보며 세운 삼일 밤이,
온기가 남아있는 유골함에 손을 댄 그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의 끝은 넋의 시작인 걸까.
'생'의 무거움은 '사'의 가벼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까.
껍데기일 뿐이다 껍데기니까 조카의 영혼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언니의 등을 쓸어내리며 이를 앙다물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와닿지 않지만...
선한 부부에게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인간은 힘이 없다.
“십자가 빼! 제발 그거... 그거 빼! “
정신을 놓은 언니는 가까스로 고른 유골함에
십자가를 빼 버리라고 소리쳤다.
아이가 원인불명의 아토피로 밤새 피가 나도록 긁고 잠을 못 자고 있다.
밤마다 아이를 가까스로 재우며 염증부위를 때리고, 누르고, 바르고를 반복하다 새벽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그때 그 일이 진짜가 아닌거지? 내가 착각한 것 같기도 해서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가족 누구도 쉽게 말할 수도 전화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을 견뎌주기를 바라고 바라는 고통의 시간이다.
아이를 돌보면서 조카와 지냈던 그 시절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언니와 형부는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이 슬픔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좀 가늘어지는 시간이 올까.
아이의 병원 스케줄 때문에 멀리서 동동거리다가
아이를 등원시키자마자 시동을 걸었다.
운전에 익숙하지 않지만 언니에게 죽이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조카의 생일 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