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의 독대

by 봄날의 옥토

침대 머리맡 블라인드 사이로 어슴푸레한 여명이 스며들어 눈을 떴다.

그렇지 않아도 설핏한 잠 속을 헤매고 있던 참이었다.

시계를 보니 6시다.


간 밤의 꿈은 잠시도 고요하지 않았고 바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 같은 막연한 기억이 남아있다.

몸이 찌뿌듯한 느낌이 있지만,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 얼굴을 잠시 들여다본 뒤 조용히 방을 나와 거실로 향했다.

맨발로 차가운 거실 바닥을 천천히 걸으며, 가족들이 아직 꿈속에 머물고 있음을 생각한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모든 알람을 끄고 눈이 절로 떠질 때까지 푹 잔다. 안방에 있는 남편과 아들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소금물로 가글을 한 뒤, 투명하고 묵직한 유리컵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갈증이 가시지 않아 반 컵을 더 들이켰다. 꿈속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헤맨 탓인지 유난히 목이 마르다.


나는 투명한 유리컵을 좋아한다.

그 속을 통해 음료의 색깔과 빛의 굴절을 볼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컵을 바로 씻지 않고, 거실 탁자에 내려놓아 본다.

다시 들었다가 가만히 또 내려놓는다.


묵직한 컵과 둔탁한 탁자가 조용히 만나는 소리를 유난히 좋아한다.

날카롭지 않은 낮은 울림이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소리는 삼키고 묵직함 만이 낮게 울려 퍼지는 이 소리가 좋다.


컵에서 시선을 돌린 나는 거실 창밖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잠시 앉아 멍하니 기다린다.

오늘은 몇 시에 만날 수 있을까.

요즘 매일 아침 이 시간이면 창문 앞을 서성인다.

기다리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시간을 조금씩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출.

내가 기다리는 것은 바로 일출이다.

겨우내 보지 못했던 태양의 떠오름이, 봄이 되며 다시금 얼굴을 비추게 되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지난 초겨울 이후 오랜만에 마주했던 붉고 둥근 해는 그 자체로 감격스러웠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뒤 맞이한 사계절 속에서, 우리 집이 일출을 볼 수 있는 집이라는 사실은 나를 더욱 설레게 했다.


겨울 동안에는 맞은편 아파트 건물에 가려져 일출을 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겨울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동그랗고 붉은 오묘한 구슬과도 같은 태양이 동쪽 하늘에 모습을 보이기 직전의 아우라.

곧 해가 떠오를 것을 예고하는 분주함이다.

산등성이의 숲은 찬란한 빛으로 반짝이고, 잿빛이었던 하늘은 황홀한 노을처럼 붉게 물들었다.


우리 동네 산은 밤새 품고 있던 황금 알을 이렇게 매일 낳는다.

고귀한 출산은 환희로 물들고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감동을 한 나는 아름다운 해의 기운을 마음껏 마셔본다.


마음 같아서는 온 가족을 깨워 함께 이 경이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들이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는 지금, 나는 홀로 태양과 독대하는 이 순간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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