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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an 18. 2021

한국인의 결혼식은 한국스럽다.

알맹이보다 껍질에 더 치중된 한국 결혼식 문화   

지난 2020년은 모두에게 있어 큰 의미로 다가온 한 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가족의 큰 행사가 2번이나 치러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게 다가온 해이다.


그 가족의 큰 행사는 바로 내 남동생의 결혼식과 남편 남동생의 결혼식이다.

결혼식을 미뤄야 하나 말아야 하는 큰 갈등과 위기 속에서 많은 하객들의 초대를 포기하고 본인들의 날을 선택한 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위기를 잘 헤쳐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두 동생 덕분에 코로나 시대 속에서 결혼식을 2번이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또한 나의 결혼식도 포함하여) 그동안 한국인의 결혼문화에 대해 느낀 바가 많은데 결론은 한국인의 결혼식은 참으로 한국스럽다는 것이다.


서양의 문물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웨딩드레스와 턱시도의 본고장이 우리나라인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멋지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는, 단 30분 내외의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의식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수시간을 메이크업과 헤어 및 드레스 입는 치장 시간에 할애한다.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인 나 역시 예식 5시간 전부터 헤어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으니 이미 말 다했다.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나고 거울 속에 비친 ' 나'를 보니 '역시 케이뷰티는 대단하다'는 감동을 받으며 열심히 셀프 카메라 찍는다.


본 예식 시작 전 양가 측 부모님들의 미묘한 경쟁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라 하객들이 절반 이상 줄었지만) 신랑 신부 측 가족이 하객들에게 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상대측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이 얼마나 왔나 하며 힐끔힐끔 곁눈질을 한다. 또한 축의금 줄이 얼마나 섰는지 너무 쉽게 다 드러나다 보니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해도 신랑 신부 부모 중 한 측은 살짝 조바심을 낸다. 아마도 그동안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지위가 드러나기 때문이랄까.

코로나 시기라 예전보다 사람들을 덜 초대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부모라면 그분은 친척이나 친구가 별로 없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많이 못 온다는 것에 착잡해 한하면 그동안  뿌린 돈이 많았던 부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통장 계좌이체로 차곡차곡 돈이 들어올 테니 식대 값 아꼈다고 나중에 기뻐하시리라.


드디어 본식이 시작된다.

그날의 주인공과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그날의 주례가 좀 더 일찍 끝나길 모두가 한 마음속으로 바라고 염원하고 있는 있는 기운이 감지된다.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나야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여기서 고해하건대 그동안 나는 내 친구들의 결혼식 주례가 단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내가 나쁜 년 인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결혼식을 찾아갔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바보인 건지.

다른 사람들은 그동안 갔던 결혼식의 주례 한 말씀은 기억이나 할지 궁금하다.

주례가 조금이라도 더 길어지거나 지체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힘들고 지루해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냄비근성이 쉽게 탈로 나는 그 순간과 겹칠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가족들끼리는 식장에 누가 왔냐 안 왔냐, 부조금을 얼마 했냐 안 했냐 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보여주기식 점검 클로징으로 마무리된다. 이후로 인간관계의 만남이 다시 리셋되어 정리정돈 현상이 일어난다.

 

일생일대 단 한 번의 결혼식이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그 어느 보다도 신중하고 까다로우며, 예민한 척을 하면서도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들을 순식간에 받아들여 안정적으로 행사를 마치는 이 의식을 우리는 언제쯤 탈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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