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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Jul 26. 2024

박물관 앞 빨강머리 앤

낭독으로 순수 행복 체험하기

"제가 빨강머리 앤 열심히 책 읽고, 색칠하는 모습 보며 엄마가 앤에 빠져 있구나. 그렇게 몰입하며 행복해하는 엄마 모습은 처음 봤다며 앤 수업하는 4주 동안 저희 가족이 다 같이 행복해졌어요." 

올해 60이 되신 분의 소감이었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살아나고, 대한민국이 건강해진다는 것이었는데. 극소수이지만 그걸 이렇게 쉽게 이루게 되다니...


춘천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도시가 살롱' 2024년 상반기에 선정된  '박물관 앞 빨강머리 앤'!

춘천이 문화 도시로 선정되기 1년 전, 2020년에 예비 문화도시로 선정되었을 때 시작한 문화 프로그램이다. 나의 일터가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춘천에 친구를 만들자가 목표다. 취지가 재미있고 소박하지 않은가? 


나는 오래전부터 참여자로 참가를 해봤는데 이젠 장소가 생겨 주인장으로 신청을 했고, 당당히 선정이 되었다. 그것이 올봄에 이뤄져서 6, 7월 8주 동안 진행해서 오늘로 끝이 났다.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는 여자들끼리 모여 저녁 먹고, 낭독하면서 색칠하고, 노래도 부르고, 캘리도 하면서 앤과의 추억을 나누는 시간인 거다. 


처음에는 6명 정원에 8주로 계획했는데 일곱 번째에 문의를 한 사람이 문간에 서서해도 좋으니 꼭 좀 넣어달라며 애원을 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사람을 제한두나 하는 생각에 그럼 6명씩 4주 두 기수로 운영하면 12명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 그렇게 선회를 했다. 12명을 어떻게 모객하나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모여졌다. 내가 아는 사람, 인스타나 춘천문화재단 홈피, 신청자의 지인, 그리고 학천테라피 방문객 등 여러 모양으로 모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알게 된 사실! 2기 6명 중 이게 낭독을 위한 모임이라고 알고 온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머지 다섯 명은 그냥 '빨강머리 앤'이라니까 무조건 신청했다는 것이다. 낭독을 처음 접하다 보니 어려운듯한데 묘한 매력이 있어서 관심이 생겼다는 거다. 각자의 캐릭터를 상상하고,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보듯이 말해야 하는 것, 상황을 이해하며 서브텍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알고 낭독해야 한다는 등등. 그러면서 책 읽기가 재미있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집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단다. 


두 시간 동안 낭독은 기본으로 가고, 주마다 주제를 바꿔 이벤트를 넣었다. 2주 차에는 나의 인생곡을 함께 듣고, 가사를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올해 환갑이 되신 분이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을 톡방에 올려준 이후로 자신은 대학생이 되었다며 학교풍경, 당시에 만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사를 직접 낭독을 하니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하면서 새삼 이 노래에 더 애착이 생겼다는 것이다. 노래 하나 떠올렸을 뿐인데 각 사람들은 자기의 애창곡으로 인해 그 당시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낭독을 하다 보니 앤의 솔직함에 우리는 빠져들고, 그녀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고, 매슈의 따뜻함에 마음이 녹고, 마릴라의 분위기 깨는 행동에 웃고 하면서 우리는 순수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앤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서 따뜻한 뭔가가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순수의 행복'이라 말한다. 어떤 분은 내가 이 일을 진정으로 즐기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덩달아 행복해졌단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무수히 올리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헤어짐이 있는 건 알았지만 4주가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다니! 이 행복감을 기억하며 한 동안 우리의 인생의 일부를 앤과 함께 보낼 수 있음을 새겨보고 싶다. 춘천엔 춘천앤이 있음을 각자의 마음에 잘 보관해 두고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는 춘천 박물관 야외극장에서 빨강머리 앤 낭독극을 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고마웠어, 빨강머리 Anne, 그리고 춘천 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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