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만나면
줌에서 본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키였다. 키 작은 나로서는 줌미팅이 좋았다. 올려다보지 않고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첫 만남에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작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애써 숨기지만 난 쓸데없이 그 마음을 잘도 캐치해 낸다.
학창 시절에 키가 작아서 1, 2번은 죽어도 안 될 거야 하는 강한 의지 덕분에 그래도 5번 뒤쪽의 번호를 딸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키 작아서 불편했던 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키가 작아도 난 인기가 많았으니깐. 단지 소개팅 할 때 상대 남자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뿐. 그래서 쉰 번도 넘게 선을 봤는지도 모르겠지만. 니네가 복을 찬 거지ㅋㅋㅋ
엊그제 내가 운영하는 '내글방낭' 수강생들과 춘천에서 ‘춘천 겨울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모였다. 글쓰기 수업의 장점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아야기를 나누다 보니 4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끈끈한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만나서 더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만남을 추진했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기꺼이 참석해 줬다. 서로 다른 기수가 섞여 있기 때문에 줌에서조차 못 본 사람들도 있어서 그 서먹함을 깨기 위해 나름 알찬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수강생 중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있어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해 달라 했고, 영어 강사가 있어서 오늘의 영어 표현도 맡겼고, 청일점이 있어서 낭독도 부탁을 했다. 우린 낭독으로 모인 사람들이니까.
모임 장소는 춘천시 문화재단에서 춘천 시민에게 무료로 공간을 대여해 주는 ‘모두의 살롱 효자’에서였다. 2월에 할 낭독 콘서트 아이디어 회의도 해야 해서 세 시간을 예약했다. 그런데 이 장소가 주택가 안에 있어서 주차도 어려웠고, 찾기도 힘든 곳이었다. 거기다 차가 막혀 늦은 사람, 서울에서 기차까지 놓친 사람들이 있어서 10시 반 시작이 11시 반이 되어서야 모두 모이게 되었다. 만나자마자 이곳에 모이는 모험담을 펼치다 보니 아이스 브레이킹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어어, 이게 아닌데. 난 레크리에이션 강사한테 부탁까지 했는데. 뭐 서먹한 거보다야 낫지.’ 아무리 친해 보여도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각자 소개를 하고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오른손 들고, 왼손 들고 짝짝짝'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이거 요양원 분위기 아냐?”하는 소리에 우린 빵 터졌고, 졸지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아이스 메이킹이 된 셈이었다. 그럼에도 꿋꿋한 레크리에이션 선생님은 이런 얼음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맡은 임무를 수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세 시간이면 우리의 낭독 콘서트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겠구나 했는데 그 바람은 물 건너가고 닭갈비집으로 고고고~!!
식사 후 의암호가 넓게 보이고, 강 건너 레고 랜드가 보이는 카페에서 닭갈비 냄새 풍기며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나는 여행자가 아닌 리더로 있다 보니 마음이 급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필코 낭독 콘서트 회의를 하리라는 생각에 앉자마자 회의 모드로 들어갔다. 생각해 온 것들을 내놓고, 각자 맡아서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누구 하나 빼는 사람 없이 그럴게요 분위기가 되니 회의는 싱겁게 끝! 공연 장소 잡는 것과 각자 맡아 글 쓰는 것만 하면 1단계 준비는 완료인 것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번 낭독 콘서트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생길지 기대반 피로반! 아니, 그냥 기대 만땅으로 해야겠다.
새벽부터 쑥버무리와 브라우니까지 준비를 해 온 사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서 사사삭 손, 발이 되어 도와준 사람들, 분위기 메이커로 우리를 계속 웃게 해 준 사람, 웹드라마 여주인공 같은 외모 천재인 사람 등등. 서로 거스르는 것 없이 배려하고, 웃고, 나누는 사이 아쉽게도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서로 포옹하며 2월에 있을 낭독 콘서트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춘천은 다른 지역보다 추운 곳이라 모임을 망설였었다. 그럼에도 한겨울에 모임을 강행했던 이유는 겨울이 오히려 따뜻한 계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생각은 적중했다. 집에 와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니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빛났다.오늘의 모임이 설레였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나보다. 컴퓨터 안의 세상보다 말할 나위 없는 사람의 공간이 이래서 아름다운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