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 걸려 1주일 만에 레슨 온 예나는 6학년이다. 요즘은 3학년만 돼도 피아노를 끊는 추세다. 예나는 오히려 내가 그만두라고 하는데도 자기는 전공 상관없이 계속하겠다는 피아노에 진심인 아이다. 전공할 정도의 수준이 아닌데 어느 날 전공한다고 하면 대략 난감이겠지. 난 전공할 거면 지금 이 상태로는 어렵다고 예나맘한테 선포한 상태다. 예나 모녀는 한결같이 전공 안 한다, 그냥 예나가 피아노 배우는 게 좋고, 나랑 같이 교감하며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피아노를 가르치는 거라며 나를 안심(?)시킨다.
이 뜻은 예나가 그다지 피아노를 잘하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1주일을 쉬고 와서 Eb장조, 그러니까 내림마장조 스케일을 틀리지 않고 쳤다. 우린 둘 다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린 채 서로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어떻게 이게 됐을까?"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다는 얼굴로 예나는 대답했다.
"안 되는 때가 있었기에 되는 때가 도래한 거지."
내가 말하고도 너무 멋있어 얼른 메모를 했다. '안 되는 때가 있었기에 되는 때가 왔다'는 말. 예나에게 전공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아이에게도 피아노가 되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해야겠지. 나도 내가 피아노로 이렇게 살 줄 몰랐었는데 누구를 뭐라 결정지어줄 수 있단 말인가.
피아노로 석사까지 마쳤다 해도 그 시간이 나에게는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그래서 내 학생들은 다른 전공을 하면서 피아노를 즐기기를 바랬다. 피아노 잘 치는 의사, 요리사인데 피아노까지 쫌 칠 줄 아는 사람으로, 피아노가 있는 곳에서 피아노를 치는 스튜어디스 등등. 나는 아이들에게 그들의 꿈 옆에 덧붙여 피아노까지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게 더 근사할 것 같다고 나의 뜻을 지지해 줬다. 그래서 나한테 피아노 배우는 아이들은 전공은 피아노를 선택하지 않겠다고, 취미로 멋지게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한다. 물론 싹수가 노란 아이들은 진작부터 전공생을 키우는 선생님들에게 인수를 해준다. 내 양심상 난 전공할 아이들을 서로 피 말려가며 레슨 하고 싶지는 않아서다. 아니 그럴만한 실력도 안 되고.
꽤 오래전 한 학부모의 꿈이 그랬다. 어떤 그룹 회장이 나와서 피아노를 치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었단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피아노를 시키는 거라고 했다. 그에 반해 그 아이들은 너무 개구져서 레슨이 거의 불가능했었다. 서른이 넘었을 그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자라났을까 궁금하다.
주제 파악 잘하는 피아노 선생한테 배우는 우리 아이들. 다행히 피아노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 건강한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이번 방학은 친구들끼리 듀엣곡으로 피아노 연주의 즐거움, 앙상블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게 목표다. 아이들은 짧은 여름 방학 동안 듀엣곡 하나라도 더 완성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귀를 세워 서로의 소리를 들어주고 맞춰주려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안 되다가도 반드시 되는 때가 오니까 너무 마음 졸이지 말아라, 이 사랑스러운 아그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