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대할 때
오랫동안 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니 내게도 잦은 통증이 찾아왔다. 운동을 자주 하지 못하고 늘 한 공간에 앉아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군데군데가 아파오기 시작한 거다. 이럴 때 생각나는 건 ‘내가 보험을 제대로 들었나?’이다. 마침 보험 설계사가 보험을 재계약하려면 내 사인을 받아야 한다며 춘천에 오겠다고 했다.
“카페보다 더 좋은 우리 집으로 오세요.”라고 말하니 오전 11시쯤에 오겠단다. 그 말에 ‘그럼 점심은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에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나 때문에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는데 식사 대접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에이,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시간도 없는 데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자기 고객이니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하며 마음속이 갈팡질팡이었다. 간단하게 초밥을 할까, 아니면 면종류? 아냐 아냐. 그냥 과일이나 내자. 근데 그 싸인 꼭 직접 해야 하는 거야? 아, 귀찮아. 쓰다만 글도 써야 하고, 녹음도 조용한 때 해야 하고, 학생들 곡도 골라야 하는데. 그때 마침 빨래가 다 됐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 짜증이 폭발할 뻔했다.
만나서 보험 설명을 듣다 보니 남편과 함께 왔다는 말에 일단 점심에 대한 부담감은 사라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얘기가 잘 통해서 조금 편안한 마음에 보험 이외의 일상도 나누게 되었다. 상담 이후에는 내가 추천해 준 코스로 춘천 여행을 하겠다며 이후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는지 그녀는 조금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헤어질 때는 남편과 함께 먹으라고 참외를 싸줬다. 문은 잠겼지만 마음의 빗장을 풀어놓고 그녀는 떠났다.
소파 위에 요즘 내가 읽고 있는 ‘겐샤이’를 보는데 살짝 마음이 이상했다. ‘누군가를 대할 때 그가 스스로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의 겐샤이!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녀를 만나기 전, 내 마음이 겐샤이를 실천하지 않은 것마저도 찔림이 되어 나 혼자라도 부끄러웠나 보다.
내게 세상은 피아노가 전부였지만, 언제부터인가 피아노가 아닌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한 명 한 명의 연주하는 해석이 다르고, 그 다름만큼이나 인생도 다르다. 그렇기에 만나는 모든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책을 통해 또 한 명의 새로운 친구를 얻은 오늘. 겐샤이를 기억하며 나 자신에게도 겐샤이를 실천하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래본다.
*위의 글은 '나디오'에 연재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