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를 한국에 정착시키는 일을 하는 친한 언니가 있다.
탈북자들 중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피아노를 가르쳐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순간 나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들었던 북한 말을 쓰는 여자들이 떠올랐다. 쿡쿡 웃음이 났다. 그 드라마에서는 코믹하게 그려냈지만, 내가 만날 탈북자들은 얼마나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일까. 목숨 걸고 두만강 건너 어렵게 남쪽으로 왔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을 테고 삶의 질곡이 한가득 묻어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웬걸! 실제로 만나보니 다들 밝고 장난기 가득한 재미난 사람들이었다. 웃음을 잃지 않으며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분은 배우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분이었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들에게 자신이 남한에서 잘 살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배우는데 힘을 쓰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 선생님 모시고 제가 북한 구경시켜드릴게요”
난 그 말만으로도 속으로 얼마나 가슴 뭉클했는지 모른다. 은근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다. 난 이미 북한 투어를 예약해둔 셈이라는 거~ 통일이 되기만 해 봐라~ 로컬 주민의 안내에 따라 여행을 하는 남쪽 여행객 1호가 되리라!
예전에 그분 댁에 놀러 갔을 때 직접 만들어주신 북한식 순대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입맛이 너무 초딩이라 심심한 순대 맛이 쫌 별로였었다. 차려주신 정성 때문에 맛있는 척하며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오리지널 아바이 순대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속초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아바이 순대! 이제는 아바이 순대만 보면 그분 생각이 저절로 난다.
어린 시절 반공 교육을 받아온 나는 북한 사람은 모두 빨갛게 생겼을 거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빨갱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하면서. 이렇게 관계를 맺기 전에는 탈북자라 하면 덜컥 겁부터 났는데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렵게 탈북해서 나한테 오기까지의 그 시간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레슨 끝나고 차려드렸던 밥 한 끼, 레슨보다 더 소중했던 주고받은 이야기들, 음악으로써 정서적 괴리감을 좁혔던 그 숭고한 시간들. 우리는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을 떠나 피아노로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눠 추억의 앨범을 간직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에 대한 편견만 없다면 누구나 서로를 껴안을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겠지. 나도 모르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위의 글은 '나디오'에 연재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