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우러 온 백발의 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 저... 나... 피아노 좀 배우고 싶어서요.”
“어머~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레슨이 거의 끝나갈 저녁 즈음, 퇴근하려고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웬 백발의 할머니가 들어오셔서 머뭇거리며 입을 떼지 못하고 서 계셨다. 피아노를 한 번도 배워본 적은 없는데 꿈에서 하나님이 자꾸 찬송가를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놀라서 찬송가집을 드리면서 할 수 있는 곡을 연주해 보시라고 했다. 어설프지만, 한 번도 배워보지 않으신 분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악보를 잘 보셨다. 그래서 바로 배워보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배우는 비용이 비쌀 텐데'하며 얼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이미 레슨비를 내실 형편이 안 될 거라고 눈치를 챈 상태였다. 그래서, 레슨비는 안 받을 테니 대신 교재를 직접 사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빠지지 말고 성실히 하시는 게 레슨비라 말씀드렸더니 얼굴이 금세 환해지셨다.
며칠 뒤 다시 할머니가 오셨다. 신문지로 곱게 싼 피아노 책을 들고서 말이다. 정성스러운 그 모습에 순간 울컥했다. 할머니의 피아노에 대한 갈망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에! 그날부터 피아노 레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분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건반을 눌렀다.
어른이 다 돼서 피아노 배우기가 힘든 이유는 몸이 굳어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운명처럼 나에게 온 76세 할머니를 레슨 하면서 그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할머니의 손목이 뻑뻑해서, 손목을 잡아주며 흰건반 치기를 하는데 힘만 들고 잘 안 됐다. 나중에는 나의 손등 위에 손을 얹고 나의 팔과 손목의 움직임을 한 번 느껴보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는 릴랙스 하는 방법을 번개처럼 터득하시고는 혼자 해보더니 훨씬 유연하게 건반을 누를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서로 기뻐했고, 흘러가는 피아노 시간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과연 내가 70대가 되어 배우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그 할머니처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동네의 골목에서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문 앞에서 서성이는 동안 할머니는 얼마나 갈등을 하셨을까. 레슨비가 부담되는 어려운 현실보다 설레는 꿈의 갈망의 무게가 더 컸기에 노크할 힘을 내신 거겠지.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린다는 진리를 이렇게 또 배우게 되다니! 할머니의 용기에 박수가 저절로 나오는 이유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 또한 76세 할머니를 가르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인생이 여전히 배움으로 가득 찬 것이란 걸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진 않겠지만, 인생을 차차 정리해 나가며 한 번쯤은 배워보고 싶었던 걸 찾아가진 않을까? 죽기 전까지 인생은 버켓리스트다!!
*위의 글은 '나디오'에 연재한 내용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