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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Sep 04. 2023

제주 3일 차/한여름과 늦여름의 차이

계절도 사람처럼

여행 오기 전 제주의 일기예보는 비 아니면 폭우였다. 금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머무는데 화요일부터 개는 걸로 예보가 됐는데 웬걸! 폭염으로 얼굴에 열꽃이 피었다ㅜㅜ


오늘은 서귀포에서 우도로 가는 날이었다. 서귀포 여행을 제대로 못 했지만 이중섭 작품과 예전에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이중섭 거리가 아쉬워 시내로 향했다.


아~ 근데 전시 작품 교체 작업으로 오늘까지 휴관이란다. 날씨는 왜 이리 무덥던지. 입고 있던  청바지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닌가. 마침 이중섭 거리 중간에 열린 플리마켓에서 파란 하늘색 스커트를 사서 바로 갈아입었다. 급기야는 너무 더워 겉에 입은 얇은 옷을 벗고 나시만 입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안 입었던 나시였는데 이 늦여름에 웬일이니ㅡㅡ;;


점심 먹고 식당 바로 옆 '유동 카페'에 들어갔다. 천장에까지 상장과 자격증 액자를 붙인 유능 하면서  유명한데 위트까지 있는 바리스타 커피숍이었다. 제주는 좋았던 게 카페에서 다 서빙을 해준다는 거. 그리고 이곳은 유명세에 비해 커피값도 착했다. 남편과 둘이 마셨는데 만원이 채 안 되는 9,500원이라니. 난 카페라테, 남편은 그곳 시그니처인 송산동 커피를 시켰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송산동이 그곳 지명이었다능^^


드디어 고대하던 우도를 가기 위해 성산항으로 차를 몰았다. 대략 한 시간가량이 걸리는 거리였다. 주일이라 그런지 편도 2차선 도로는 차량이 많지 않아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무암 돌담이 나는 봐도 봐도 너무나 좋다.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거라 그럴 거다. 나에게만 볼 수 있는 걸 볼 때 사람들은 이런 기분이 들까? 그게 무얼까? 괜히 삼천포~


와~ 성산일출봉이다! 유명한 곳은 달리 유명한 게 아니었다. 그냥 입이 벌어지고 아무 말을 못 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산방산이 그랬고, 새별오름이 그랬다. 이번에는 성산일출봉이 그러고 있었다. 계획상으로는 성산일출봉을 다녀오려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았다.


우도는 고작 10여 분이면 도착했다. 배에서 연신 감탄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우도에 대한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네비에 숙소를 치고 가다 우도봉이 보여 그곳으로 핸들을 돌렸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우도라는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광이라니! 아~ 근데 그늘도 없는 이 땡볕에 도저히 더위를 참을 수 없어서 바로 숙소행! 생각보다 예쁜 숙소는 우도 1박을 잘했다 인정하는 듯했다. 얼른 씻고 나가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할 만큼 길도 예뻤다.


걷기 좋아하는 우리는 씻고 바로 나왔다. 내일 아침에 먹을 사발면도 사고, 주변 해변도 보고 싶어서. 트레킹화를 꺼내서 본격적으로 걷는 모드로 변신했다. "우리 우도에서 살면 안 될까?" 현실주의 남편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소리였겠지만 난 진심이었다. 딱 1년만 살면 좋겠는데. 그러면 글도, 시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첫 목적지는 하나로 마트. 동선이 어찌 될지 몰라 한 손에는 장바구니 들고 하고수동 해변을 가는 실수를 범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우린 여행자니깐^^;


아~ 근데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아름다워도 된단 말인가!! 나는 크고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도 감탄하지만, 현지의 작고 소박한, 바로 그곳이어야만 되는 것에서 깊은 감흥을 얻게 되는 유형의 사람이다. 우도에만 있는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진 땅콩밭,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제주 말궁둥이, 우도 끄트머리에 걸린 석양과 핑크빛 구름, 동네 풍경, 해변의 모습, 그리고 현지인.

아까 서귀포에서도 길을 물었을 때 친절하게 안내해 준 현지인, 길 가다 가뭄에 콩 나듯 만나는 동네 할머니가 나를 감동시킨다는 거^^




때아닌 폭염으로 땀이 흥건한 9월의 늦더위가 참 얄궂다. 몇 년 전 한여름에 제주도에 왔을 때도 지금처럼 후덥지근했었다. 하지만, 같은 여름이라도 한여름과 늦여름은 많은 차이가 있다. 더운 정도는 가을에 대한 기대감으로 늦여름이 더 덥게 느껴지는 듯하다. 한여름이야 더우려니 해서 시원함에 대한 기대가 없을 테니깐. 가장 큰 차이는 늦여름에는 바람을 느낄 수가 있다. 낮에도 그늘에서는 시원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밤낮으로 달라진 공기는 말 하나마나^^


여름도 다 같은 여름이 아닐진대 사람이야 오죽할까. 남편과 나는 참 많이도 다르다. 남자와 여자에서부터 살아온 환경, 사고하는 방식, 말하는 방법 등등. 결혼 10년이 넘으니 예쁜 모습보다 짜증 나는 게 더 많이 보이는 요즘이다. 손이 많이 가는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다. 나의 선택이니 나의 책임이라 말하겠지만 10년을 살아보니 고삐를 놓고 싶을 때가 많더라.


그래도 오늘 함께 대화를 하며 그의 편에서 생각하고, 들어주니 이해가 되는 게 많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돌봐줄까 하는 생각도. 아무리 남편이라도 장애가 있는 한 도와줘야 하는 약자 아닌가. 이게 둘 중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라는 게 덫이긴 하지만. 20년을 향해 다시 시작하는 부부세계 2탄. 그래도 1탄보다는 순조롭겠지. 아니, 순조롭기보다는 무덤덤하게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가.


그래도 남편이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썬크림 발라줄 때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보인다. 어린 아이라 착각하며 10년을 또 살아봐야겠다. 우도가 우도에 있어서 찾아오듯,  우리의 우리다움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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