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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Sep 03. 2023

제주 2일 차/한국 참 좁다

여기서도 이렇게 만나다니

해가 뜨자마자 애물단지 전기차를 당장 바꾸러 제주로 향했다. 교체비 3만 원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 처음부터 만땅으로 넣어준 연료를 렌터카 사무실까지 가는데 만땅으로 채울 재간이 누가 있을까? 한 칸 당 2천 원씩, 6천 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내고 소나타로 바꿨다. 20년도형이라 내차와 똑같지는 않아도 속이 다 후련했다.


어제 비 때문에 바로 서귀포 숙소로 갔었기에 제주에 온 김에  어제의 스케줄을 오늘 하는 걸로! 점심 식사 후 계획한 대로 움직이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다행히도 폭우의 날씨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고 우리는 신나게 첫 번째 목적지인 '꽃향유'를 향해 달려갔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팔고, 커피도 팔면서 펜션도 운영하는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입틀막! 이렇게 예쁜 곳이 있다니 딱 내 스타일이었다. 빨강 머리 앤 페브릭에, 액세서리, 예쁜 천가방, 앞치마, 작가의 제주 풍경 그림, 곳곳의 마른 꽃장식, 테이블마다 생화로 꾸며놓은 것까지. 프로방스를 고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밖에서 사진 한 장 찍는 일도 인내가 필요할 정도로 이글이글 불타는 날씨였는데 사진 찍기 싫어하는 남편 세워두고 몇 장을 찍었는지. 안으로 들어가서는 뭐 셀 수 없을 정도라는 건 안 비밀^^;


처음엔 눈으로 쫙 스캔하고, 음료 주문을 했다. 음료 나올 동안 사진을 몇 장 찍고, 자리에 와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맛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껌맛이라니! 그때 여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사장님도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여자 사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곳의 히스토리를 들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친절, 상냥, 나긋한 여주인과의 대화는 무척이나 편안하고 즐거웠다. 뭐 처음 만나서 하는 뻔한 얘기, 춘천에서 왔다, 검색해서 오고 싶은 카페라 와 봤다, 원래는 어제 오려했는데... 하면서 전기차 스토리부터 쫘르륵 펼쳐지면서 수다가 오고 갔다. 그러면서 이 물건 저 물건 들었다 놨다 하며 사재기(?)를 시작했다.


9년 전 서울에서 무작정 제주도로 내려오게 되었단다. 지금은 이곳을 중심으로 곳곳에 예쁜 카페들과 펜션이 있지만 처음 왔을 때는 허허벌판이었다는 것이다. 이 동네의 개척자인 셈이었다. 동네 들어오면서 본 간판의 앞글자가 가려진 채로 '~가리'만 보여서 '아가리'라면 정말 웃기겠다 했는데 제대로 된 푯말을 보니 '하가리'라는 거ㅋㅋㅋ 이 얘기는 못 했지만 동네 이름이 좀 더 예뻤으면 어땠을까 할 정도로 동네 풍경도 제주스러우면서 다정해 보였다.


우리 학생들 생각이 나서 선물을 고르다가 피아노 선생이란 얘기를 하게 됐다. 아들이 고딩인데 악기로 전공을 할 거란다. 그러다, 카운터 앞에 있는 종이공예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꼬삔이네 작품인데...'  우리 학생 엄마가 한지공예 작가면서 꼬삔이네를 운영 중이다.


"저거 꼬삔이네서 제작한 건가요?"

여주인은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 어머 안 그래도 아까 춘천서 오셨다길래 꼬삔이네 말하려 했는데요." 하면서 우리는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며 탄성과 웃음소리는 점점 높아만 갔다.




누구는 누군가가 꿈꾸는 일을 이미 이뤄서 살고 있다. 여주인이 나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누구는 아무도 꿈조차 꾸지 못 하는 일을 해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 남편이 그렇게 되리라! 기도한다. 하지만, 미래의 우리 남편은 지금 이 순간 카페 한 귀퉁이에서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졸고 있는 신세라니. 수다삼매경에 빠져 언제 올지 모르는 나를 기다리다 여주인이 "어머, 남편분이 지루하셨겠어요." 남편은 겸연쩍게 눈이 풀어진 상태로 "아녜요, 헤헤헤."


카페에 머무른 시간이 세 시간도 넘은 것 같다. 에고에고 오늘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 맘대로^^

다음에 제주에 오면 또 들리겠다는 인사를 하고. 꽃향유 사장님과는  안녕~  


남편! 화 안 내고 기다려줘서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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