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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피아노 Sep 13. 2023

시각장애남편 손 잡고 나가면

사랑스러운 유치원 아이의 대답

몇 년 전 교회에서 유치부 아이들 앞에서 '친구'라는 주제로 우리 부부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내 팔을 붙잡고 앞에 나갔다. 목사님이 "이 언니 오빠는 왜 손을 잡고 나왔을까요?" 하는 질문에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나는 몹시도 궁금했다. 아이들은 "저요, 저요." 하면서 서로가 말하겠단다. 소리 지르는 한 아이를 지목했더니 "서로 사랑하니까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의외의 말에 우리는 모두 "그렇지!" 하면서 그곳에 있던 어른들은 모두들 큰 깨달음을 얻은 양 한아름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 이후 교회에서 유치부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것도 그냥 "안녕하세요."가 아닌 "안녕하세요, 저 ㅇㅇㅇ입니다." 하면서 말이다. 시각장애인은 목소리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는 걸 기억했는지 안 보이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제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교과서 인사법인 것이었다.


이런 것이 통합 교육이란 것일까? 10여 년 전 독일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한 교실에서 같이 배우는 통합 교육이 센세이션 한 이슈감이었다. 그것은 교육의 범주가 아닌 생활 방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교실 안에서 만의 것이 아닌 남편의 퇴근길에서종종 일어나때문이다.


남편이 지팡이를 펴서 집에 혼자 올 때 가끔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소현이에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러면 남편은 그게 기특해서 "고맙구나, 소현아. 몇 학년이니?" 하면서 일부러 말을 걸어서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걷는다고 했다. 가정교육의 힘이겠지. 좋은 성품의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마음이 데워지는 것 같아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지금 나는 남편 명퇴 후 첫 사역으로 청주의 맹학교에 와 있다. 오전에는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고, 오후에는 시각장애 선생님들 대상으로 침을 가르치기로 했다. 청주 올 때마다 비가 와서 오늘은 3시간 넘겨 가며 운전을 했다. 나 같은 고급 인력이 이렇게 운전수로, 심부름꾼으로, 지팡이로 변신해야 한다고 투덜대기 일쑤다. 시각장애인을 남편으로 선택한 이상 나의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다목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하루 종일 있어햐 하는 오늘이다. 성경 유튜브 올린다고 노트북 싸들고  오고, 이번에 새로 산 두꺼운 책도 들고 왔는데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이렇게 글이라도 끼적댈 수 있다니... 나의 귀한 시간 돌려도~라고 말해도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니 어쩔 때는 체념을 했다가도 어쩔 때는 울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농담으로 시각장애인이 죽으면 저승길 안내하는 도우미도 같이 묻힌다는 말을 하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ㅜㅜ


유치부 아이들 눈에는 사랑하는 사이로 보이는 우리 부부의 현실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그 아이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텐데.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며 오늘도 평안한 마음을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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