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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Jun 16. 2020

음악으로 자서전을 쓴 작곡가

클래식계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갖는 작곡가를 꼽으라면 단연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세기 중반 바그너가 문학, 연극, 음악이 융합된 총체적 악극(Musikadrama)을 만들며 표현의 극대화를 이루는 오페라를 완성했다면 바그너 추종자였던 말러는 가곡과 교향곡을 통해 오케스트라와 성악이 완벽하게 융합된 총체적 음악적 세계를 구현했다. 한 시간이 족히 넘는 그의 교향곡이 던지는 장대한 서사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를 추종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일컫는 ‘말러리안’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말러는 음악적 재능과 성공을 향한 야망으로 단숨에 빈 문화계의 중심에 선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작곡가로서가 아닌 지휘자로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빈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지휘자로 데뷔했는데 열정적인 그의 지휘는 여러 음악가와 청중의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이자 음악평론가였던 한스 폰 뷜로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인기 작곡가인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도 그의 지휘에 찬사를 보냈다. 지휘자로서 그의 경력은 화려했다. 빈 음악원 동기였던 볼프를 제치고 37세에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 음악감독이 되었고 말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까지 지휘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말러는 지휘자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빈 문화계에서 많은 예술가의 구애를 받았던 알마(Alma Mahler, 1879-1964)의 사랑을 쟁취하며 41세에 결혼에도 성공했다. 알마는 유대인 화가의 딸로 태어나 문학과 그림, 그리고 작곡에도 능한 팔방미인이었다. 화가 클림트의 첫사랑이자 빈의 많은 예술가의 뮤즈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 말러였다. 말러는 결혼식을 위해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Agagietto)’를 작곡했고 교향곡 6번에도 ‘알마 주제’가 등장하며 그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여러 번 음악에 쏟아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말러의 성공적인 삶은 평탄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말러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변방 보헤미아(체코)에서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으로 오스트리아 사람 중에서는 보헤미아 사람이요 독일인들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요 세계에서는 유태인이다. 어디를 가나 이방인이요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라고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의 폭력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불우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여섯 명의 형제자매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첫째 딸까지도 병으로 잃게 된다. 유태인인 그가 빈 슈타츠오퍼와 빈 필하모닉과 계약하게 되자 반유태인파들은 독설과 논쟁으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나치 정권의 탄압 때문에 그의 작품은 널리 알려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독선적인 성격과 음악적인 고집 때문에 사람들의 반감을 사곤 했다. 미다스의 손처럼 그가 지휘하는 공연들은 성공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말러의 완벽주의 성향은 단원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또한, 연주 효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작품도 수정해서 연주하는 그의 음악 스타일은 옛 거장의 작품도 연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수시로 수정하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 예 중 하나가 1900년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Manfred Overture)>의 고요한 도입부에 시끄러운 심벌즈 타격으로 시작해 청중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알마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음악 활동을 위해 그녀의 창작활동을 제한하고 자신에게 모두 맞춰줄 것을 바랐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다. 재능과 꿈이 많던 알마는 결혼생활에서 날개 잃은 새와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말러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노골적인 외도는 말러에게 큰 상처를 준다. 삶의 한 면에서는 성공한 음악가였던 말러였지만, 다른 한 면에서는 불행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 삶이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 말러가 큰 위로를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독일민요 <오 사랑하는 아우구스틴(O du lieber Augustin)>을 들었을 때였다. 노래를 들으며 그는 말할 수 없는 위로의 감정을 느꼈고 후에 음악을 만들 때도 무엇보다 가곡 작곡에 열정을 쏟았다. 또한, 그것이 다른 큰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한 곡을 완성한 후에는 새로운 곡을 생각하느라 이전에 작곡했던 곡을 잊어버렸던 슈베르트와 달리 말러는 작곡한 가곡의 선율을 마음속에 머물게 하여 다른 가곡에도 적용하고 또 교향곡에도 스며들게 했다.    

       

말러의 음악 세계에서 가곡과 교향곡의 장르적 구분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 장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상과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시대적으로도 19세기 중엽부터 큰 연주장에서 가곡 연주가 이뤄지며 더 큰 효과를 내는 관현악 반주를 통한 새로운 가곡 양상이 나타났다. 그가 쓴 42곡의 가곡 중에 절반 이상이 관현악 반주 편곡 버전을 갖고 있고 6개의 주요 연가곡 가운데 4개도 관현악 반주 편곡 버전이 있다. 반면 9개의 교향곡 중 4곡은 관현악과 독창과 합창이 결합된 양식으로 그의 가곡의 주제가 상당수 등장한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의 주제가 교향곡 1번에 사용됐고 독일민요 시집에 기반한 <소년의 마술 뿔피리(Das Knaben Wunderhorn)>로부터 온 주제들이 교향곡 2번, 3번, 4번에서 사용되었다. 또한, 교향곡 5번과 6번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eder)>의 주제가 등장한다.     


말러의 음악적 특징은 오케스트라에서 각각의 악기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다채로운 음악적 다이내믹과 흐름을 갖는 것이다. 개개의 선율적 가락이 더 큰 악기군의 맥락 속에서 대위법적으로 짜여서 다양한 음악적 표현과 구성이 만들어진다. 특히 프렌치 호른이나 오보에가 현악기 대신 선율을 전달할 때가 많고 금관, 벨, 이국적인 타악기 등의 사용과 극대화된 소리의 대조를 통해 예상치 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지나가고, 꿈꾸는 듯 서정적인 선율이 어디선가 다가오다가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강렬한 제스처가 일어나는 등 그의 교향곡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광활한 우주 속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또한, 장대한 다양한 오케스트라 음색에 성악이 완벽하게 융합되어 극대화된 음악적 효과를 만든다. 가장 극대화된 음악적 효과가 있는 곡은 교향곡 8번으로 초연 당시 1,000명이 넘는 연주 인원이 동원되어 ‘천인’이라는 닉네임이 붙게 됐다. 말러가 ‘그동안의 교향곡은 이 곡을 위한 전주곡이었다.’라며 애착했던 곡이다. 연주 시간 90분에 달하는 이 대작은 처음부터 사람의 목소리와 기악이 어우러져 환희의 함성 같은 도입부로 강렬한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말러의 음악은 그의 철학적 생각으로 가득했고 칸타타 <비탄의 노래>를 포함하여 여러 가곡과 교향곡 성악 부분에 있는 가사를 직접 썼다. ‘내가 작곡한 교향곡은 내 삶의 전체의 과정’이라 말했던 말러는 인간의 고통, 신과 인간의 관계, 구원과 천국 등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에 물음표를 던지고 음악 속에서 인생의 대화를 이어갔다. 말러에게 음악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였다. 당대 갖은 입방아에 올랐었고 생전에 그의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말러는 ‘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라고 굳게 믿었고 그의 믿음은 예언이 됐다. 사후 50년이 흐른 뒤 비로소 그의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기 시작했고 오늘날 ‘말러리즘’, ‘말러리안’과 같은 단어들이 말해주듯 말러의 시대를 맞게 됐다. 지휘자라는 타이틀보다 시인이자 작곡가로 불리는 것을 원했던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음악 속에 고독과 죽음의 염세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만 동시에 그 그림자를 비추는 빛이 따뜻하게 머물고 있다. 지치고 외로운 한 인생이 온건히 음악 속에 담겨 영원한 평화를 누리며 우리 인생의 어둠 속에 빛을 비추고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어느 누구도 이제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겠지     


그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이 없다

나 역시 부정할 생각 없이

사실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번잡한 세상에서 죽었다

그리고 고요한 나라에서 쉬고 있다

나만의 천국에서 홀로

내 사랑 안에서, 내 노래 안에서 살고 있다     


-말러의 가곡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https://youtu.be/vTqbTP5qy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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