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철수 편지 써요.”
수업 중인데 친구가 딴짓을 한다고 한 아이가 고자질을 한다.
“아, 철수야, 편지는 이따 끝나고 써 보자.”
철수가 멋쩍어하며 편지를 숨긴다.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는데 철수가 가지 않고 미적거린다. 아까 미처 책을 대출하지 못한 영희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동안에도 철수는 괜히 교실 안을 서성거린다. 문득 아까 철수가 쓰던 편지가 떠오른다. ‘설마 나 주려고 쓴 건가? 그래서 편지 주려고 남아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뀔까 두려워 애써 다른 생각을 한다. 내가 먼저 말을 건다.
“아이구, 우리 철수 가방이 열려 있네. 안에 있는 거 다 쏟아지겠다. 선생님이 가방 닫아 줄게.”
마침내 남아 있던 영희가 책을 고르고, 공책에 빌려가는 책의 제목을 적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철수는 나갈 기색이 없다.
“영희야, 잘 가~.”
영희를 보내고 나자 철수가 비로소 현관 문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선생님, 이거…….”
“어머나, 철수야~.”
수줍게 내민 철수의 손에 편지 봉투가 들려 있다. 가슴이 기쁨으로 가득 차오른다.
“세상에, 너무 고마워. 철수야. 와, 감동이야.”
사랑스러운 아이를 꼭 껴안아 주고 보낸 뒤 얼른 편지를 열어 본다. 친절하게도 봉투에 ‘열으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선생님저철수에요
계속다니지만3학년동안친절하게가르쳐주셔서감사합니다.
저가선생님제일존경하는거알죠?
그리고새해복많이받으시고건강하세요.
그리고새해잘진해보고싶어요.
배려하며학생들을위해수업하시는선생님멋지싶니다.
그리고저와함께해시간있지안을게요.
그럼안녕히게세요!
선생님을조경하는철수올림 -
건강하세요!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막 차 올랐다. 글씨가 삐뚤삐뚤하고, 맞춤법도 엉망이고, 띄어쓰기도 전혀 되어 있지 않지만 진심이 담긴 글은 마음을 울린다.
지난 1년 간 함께 했던 철수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선물로 주었던 에코백을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녀서 구멍이 났던 것, 가방을 바꿔주었는데 일주일 만에 또 헌 가방으로 만들었던 것,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해서 함께 슬퍼했던 것,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받게 되었다고 해서 멋지다고 말해 주었던 것, 복사를 서게 되었다고 철수가 자랑했던 것…….
3학년이 되면서 처음 나와 만난 철수는 같은 반이 아닌 친구들도 “김철수, 걔 학교에서 맨날 혼나요.”하던 아이였다. 자기가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담임선생님께 혼난다고 억울해 하고 화가 많았던 철수는 알고 보니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였다. 그런 철수에게 아마 나는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준 선생님이었나 보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존경’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거듭 써서 말해 준 적이 있었던가. 아이의 ‘존경한다’는 말에 어쩐지 내가 좀 더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