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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게 40

흘려보낼 시간은 없다(1)

by Lou


“요새는 또 뭐 해?”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숨을 돌리기 무섭게 묻는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취미가 생겼냐는 의미란 걸 모를 리 없다.

나이 들어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늘어가는 취미들을 지켜보는 남편은 가끔 이제 그만 늘리라며 타박하지만 그럴 마음 전혀 없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걸 어쩌란 말인가 가끔은 헷갈린다. 하고 싶은 게 많은 건지 호기심이 많은 건지

이유가 뭐든 새로운 취미가 계속 늘어나고 소소하게 누리는 게 일상의 행복이니까.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뀌며 아이들은 스스로 하는 일이 늘어나고 엄마의 여유시간도 늘어가니 고민이 생겼다.

짧은 시간도 흘려보내기 아까워 틈틈이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느라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어린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가던 시간을 지나 잠시라도 주어진 시간을 아껴 쓰려면 일단 나가야지

배낭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가는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뭐 하나라도 없으면 자유시간을 온전이 누리지 못해 필요하다 생각되는 잡동사니를 한가득 가방에 넣어야 마음이 편하다.

이제 상징이 돼버린 뚱뚱한 배낭을 보고 남편은 보부상 친구라 놀리지만 내 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기에 못 들은 척한다.

아이와 이동할 때도 중간중간 시간이 남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나 이를 대비한 보부상 가방에 항상 상비하는 건 책 한두 권과 뜨개질 거리

잠시 차에서 아이를 기다리거나 혼자 길을 걸을 때도 어디서나 요긴한 필수품이다.


보부상 가방




어릴 때부터 책 구입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 영향인지 아이들을 키우며 집은 책으로 가득 찼고 도서관과 서점은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 우리 가족 필수코스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는 부모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읽는 게 휴일의 일상


백과사전이나 고전 전집을 많이 사주신 엄마덕에 하드커버로 덮인 크고 두꺼운 책들을 뒤적이다 눈에 띄는 부분만 찾아 읽던 일

한국통신에서 전화번호부를 받아와 페이지마다 특이한 이름이나 아는 사람 이름을 동생과 찾아보는 게 놀이였고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두꺼운 전국지도 책을 펼치고 목적지를 찾아가노라면 전국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고등시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소설을 좋아해 공부하다 틈나는 대로 읽곤 했는데 회사원이 되니 자연스레 자기 개발서에 더 손이 갔다

아이를 키우며 재밌게 읽은 인문학 책 덕분에 인문학 도서를 읽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에게 푹 빠져 자연스레 철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철학 분야는 나와 전혀 관련 없는 분야라 생각했다. 정확한 답이 없는 걸 못 견디는 공대생이었기에

우연히 접한 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철학 수업까지 신청하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장르와 분야가 계속 변하는 독서 루틴 다음은 어디로?





흔들의자에 앉아 햇살 아래 뜨개하는 평화로운 할머니 모습이 뜨개 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이미지 아닐까

누구에게 배운 기억은 없지만 대바늘에 털실을 걸어 코를 만들고 뜨개를 하며 혼자 수백 번을 연습했었다.

요리나 그리기 실력은 꽝이지만 색종이 접기나 뜨개처럼 손으로 만드는 시간이 힐링이 된다.

작품이 완성되는 것도 뿌듯하지만 만드는 과정도 몰입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혼자만 온전히 누리는 카타르시스랄까


아기자기 뜨개 작품


힘들게 큰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에게 선물할 모자와 목도리를 태교 겸 만들었다. 계기는 세이브 더칠드런 모자 뜨기 참여로

이제는 종료된 행사지만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보내줄 털모자를 만들어 보내는 일로 매년 가을 신청했다.

판매하는 실을 직접 구입해서 신생아들에게 맞는 정해진 규격대로 여러 개 만들어 보내는 일종의 봉사활동이다.

임신 중 우연히 알게 된 행사였다. 태어나자마자 체온유지가 되지 않아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작은 모자하나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데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귀한 일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시작해 오랜 기간 참여 했는데 올해부터 행사 자체가 종료되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코로나로 집에서 코바늘만 하다 작년 겨울 대바늘로 만든 양말은 뜨는 방법이 새로워 몇 개나 만들었는지 모른다

유튜브 영상이 자세하게 설명해 줘서 책이나 도안 없이도 다양한 뜨개가 가능해 새로운 작품을 계속 찾는다.

새로운 뜨개를 하니 실의 종류와 개수가 자꾸자꾸 늘어난다. 그나저나 이 많은 실들을 어디에 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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