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에게 홀려 밤새도록 산을 헤매며 돌아다니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길을 잃는 주인공
산을 내려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밤이 새도록 아무리 돌아다녀봐도 갔던 길을 반복해서 헤매던 이야기‘도깨비 설화’는 주로 구전으로 많이 접했었다.
그 동화 같은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다.
초등 졸업을 앞둔 큰 아이의 겨울방학 두 달이 중등 대비로 바쁠 예정이라 빡빡하게 보내야 할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고 매년 하는 우리 가족 해돋이 여행 계획을 세우던 중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실컷 놀아보자며 2박 여행으로 계획했었다.
연말이라 복잡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예약을 해뒀는데 여행날이 나가오자 비도 아닌 눈 예보라니 당황스러웠다.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궂은 날씨에도 장거리 여행을 많이 다녔기에 가보면 어찌 되겠지라며 용감히 출발했다.
눈발이 날리는 고속도로위를 달리고 달려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로 오니 이미 눈이 한차례 뿌리고 지나갔거나 오기 전이라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를 정선에서 즐겁게 보내고 삼척으로 가는 다음 날
전날의 숙취로 매우 피곤한 아침에다 큰 아이의 컨디션 난조로 퇴실 시간이 다돼서야 겨우 출발한 정선에서 강릉으로의 여정
단순히 날씨만 좋지 않을 거란 예상을 깨고 달리는 차창 너머로 눈보라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조심히 천천히 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달리는데 도로에 계속 쌓이면서 얼어붙는 눈과 거세지는 눈보라 그리고 계속되는 산을 올라가야 하는 굽이진 도로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도 점점 불안감에 휩싸이고 온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눈은 도로에 쌓여가고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넘나들어야 했고 길은 오직 한 길 뿐이었다.
눈을 헤치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산을 오르는 언덕을 굽이굽이 오르다 보니 도로는 가파른 경사에 눈까지 쌓여 얼어버려 바퀴가 계속 밀리면서 주행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계속 바꿔가며 산을 벗어나 큰 도로로 나가보려고 노력하고 차가 미끄러지는 경사로를 만나면 다시 방향을 바꿔 이동하기를 여러 차례
가던 길을 다시 가고 다시 오고 지나며 보던 건물들을 또 만나고 또 만나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도 앱을 켜봐도 산 한가운데 턱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위치, 앞 뒤로만 나있는 길은 모두 구불구불 산을 타고 넘어가야만 했다
2시간 가까이 달려가면서 종착지나 샛길조차 없는 이 황당한 도로사정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데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길을 가다 언덕을 만나면 다시 돌고 또 진행하다 언덕을 만나 차가 올라가지 못하면 차를 돌리기를 수 번
산에 들어와 고립이 되면 어떻게 하나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겨우겨우 산비탈을 오르고 오르다 경사가 심해질 무렵
갑자기 많이 내려 쌓여버린 눈 때문에 차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오른쪽 비탈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져버린 차는 미끄럽고 경사진 도로에서 앞으로 나가지도 않고 움직이려 하면 점점 더 오른쪽 낭떠러지로 밀리는 아찔한 상황
잠시 고민하던 남편이 조심조심 차를 왼쪽으로 돌려가며 힘들게 올라간 비탈길을 천천히 다시 내려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차가 조작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엉뚱항 방향으로 움직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즐겁게 노는 걸 보자니 가슴이 써늘해졌다.
당장 내려서 눈을 좀 파던지 차를 밀어볼까 했지만 더 위험하다고 말리는 남편 말에 불안한 마음을 더 드러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신을 모두 부르며 가족의 안전을 빌고 또 빌었다
순간의 찰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이러다 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면 어쩌지 사고가 나면 우리 아이들 어쩌나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지만 25년 차 프로급 운전실력의 남편 덕분에 차를 돌려 다시 산을 내려오고 눈길을 달리고 달려 사고의 고비고비를 넘었다.
가도 가도 그 길이고 다른 길도 전혀 없고 눈도 그치지 않는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대던그때 우리를 구원할 산신령 등장!
강원도 산속의 눈보라를 뚫고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건 바로! 제설차였다
수번의 왕복된 산속의 외길을 달리느라 제설차가 맞은편으로만 지나가서 아쉬웠는데 두 시간 넘게 헤매는 동안 제설차의 열일과 천천히 그치는 눈으로 점점 도로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3시간 만에 강원도 산 도깨비를 벗어나 사람들이 사는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눈 내리는 절경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하다 점점 산도깨비에게 홀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산을 헤매던 순간들이 잠시지만 두려웠고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차에 대한 안전과 눈에 대한 차량 대비책,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 수칙에 대해 남편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계기가 되었다.
산도깨비야 이제 그만 만나자! 힘들었다 잠시였지만! 2023년은 한 해가 너무 많은 사건 사고로 힘들었는데 마지막 날까지 화려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겨울에 강원도에 오게 된다면!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눈보라를 만난다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행동수칙 1. 눈이 내리기 전에 후다닥 이동
행동수칙 2.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면 제설차가 어느 정도 이동했는지 파악 후 도로 상태에 따라 대기
행동수칙 3. 도로가 얼거나 눈이 도로에 쌓여있다면 산을 넘어가는 작고 좁은 도로가 아닌 제설이 비교적 빠른 큰 도로를 이용
알고 있어도 갑자기 닥치면 우왕좌왕하며 당황하기 마련이다. 다음 여행은 좀 더 준비와 대비를 철저히 해보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