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넘어 처음 신어본 스키입니다만
마흔 중반에 운동 신경도 타고나지 않은 엄마가 혼자 스키를 탈 수 있을까?
남자친구와 가르쳐 준다기에 따라갔다 처음 타 본 스노보드. 매년 겨울 대학원에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단체로 스키장에 놀러 가기도 했고 남자친구와도 보딩을 다니곤 했었다. 신혼에도 둘이 야간 보딩하러 다니느라 즐거웠지만 추위에 약한 탓에 보드 조금 타다 실내로 들어가 몸을 녹이고를 반복했었다. 몸과 상관없이 의지는 불타올랐으나 실력은 일취월장하지 않고 지지부진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꿈꾸지 못했던 스키장을 둘째가 초등 1학년 겨울방학이 가까워 오면서 다시 가고자 하는 열망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어릴 때부터 태워주고 싶었지만 1학년 겨울방학 친구의 큰 부상 소식에 지레 겁먹어 한동안은 마음을 접었기 때문이었다.
긴 방학에 놓여있는 긴 명절 연휴가 반갑지 않은 건 아이들과 뭘 하며 지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패턴에 맞춰 밥을 먹고 공부를 시키고 학원을 가는 것도 아니고, 제사나 가족 간의 행사도 특별한 약속도 없는 가족이라 명절이 되면 시댁 친정 하루씩 방문해서 같이 밥 먹는 게 끝이다. 주말에도 집에서 쉬는 성격이 아닌 데다 긴 겨울 방학에 애들과 씨름하는 것도 힘든데 연휴에 넷이 모여있는 시간이 달갑지 않은 게 사실. 추운 겨울 따뜻한 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지만 연휴마다 그러기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아이들에서 잔재주와 취미 생활을 조금씩 늘려주는 게 엄마의 계획이기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며 시작한 스키여행.
“스키 배워보고 싶니? 새로운 겨울 운동 시도해 보면 어때?” 큰 아들에게 은근히 물어봤다. 날 닮아 호기심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는 “엄마 나 너무 타보고 싶었어 스키도 보드도 둘 다 타보고 싶어요” 용기를 얻어 아이에게 스키를 태워주기 위해 여러모로 알아보고 있으니 스키에 진심인 대학원 후배가 겨울마다 용평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후배에서 연락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누나! 나 그때 스키장에 있어요! 형이랑 애들이랑 강습받게 하고 렌트 같은 건 내가 알아봐 줄게요!” 항상 싹싹하고 적극적인 후배에게 고마웠고 대학원 시절 다 같이 친하게 지냈던 터라 남편도 후배 만날 생각에 즐거우면서도 도와주는 게 내심 미안했는지 만나서 같이 먹을 것도 준비했다. 고마운 후배 덕에 스키장에서 아이들도 즐겁게 스키를 배우고 평생 보드만 타오던 남편도 스키를 타보는 경험을 했다. 저녁에는 후배가 숙소로 놀러 와 셋이 오붓이 한잔 하며 학교 다니던 이야기도 하며 첫 스키장 경험을 훈훈하게 마무리했었다.
다음 해인 작년 너무 추운 혹한기였던 구정 연휴,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도 스키장은 붐볐고 작년에 아이들끼리도 리프트와 스키를 잘 탄 추억을 떠올리며 우리끼리 신나게 도착. 그러다 일어난 작은 사고들. 시작도 하기 전에 입구에서 아이들끼리 서로 피하다 살짝 접촉해서 넘어진 상황에 부모끼리 상대 아이를 서로 걱정하며 좋게 연락처도 주고받았는데 불법 강사에 어이없는 소리 공격으로 황당하기도 했고 모든 걸 전해 들은 스키장 소속 스키학교 직원들의 위로와 도움으로 좋게 마무리되었고 막내의 얼굴 상처도 크지 않아 잘 지나가나 했는데 다시 아이와 함께 스키를 타러 갔던 아이 아빠의 다급한 전화. 아이가 피했는데도 속도가 덜 줄었던 건지 강습받던 아이와 부딪혔다고. 큰 사고는 아니었고 아이들도 멀쩡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하는 대로 보상을 약속하고 연락처를 주고 돌아섰지만 우리 부부는 걱정이 컸다. 아이는 아이대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데 상대 부모가 연락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아픈 느낌이 있는 곳은 원래 아프던 곳이라는 병원 진단이라며 괜찮다고 그럼에도 여행을 망쳐 속상하다고 보상을 받고 싶다는 아이 아빠 때문에 연락했다며 강습, 렌털, 리프트, 병원, 약 값을 모두 배상해 달라는 상대 어머니에게 죄송하다며 보내준 영수증대로 돈을 보내주었다. 스키장이 워낙 사고가 많은 곳인데 아직 서툴고 어린아이를 너무 욕심내서 태웠나 걱정되었고 아이도 위축되어 다시는 스키 안 탄다고 눈치를 보기에 엄마 욕심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건지 미안했고 스키장에서 우리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속상하고 마음이 안 좋았을 상대 가족들에게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올해는 절대 스키장 안 간다고 못 박는 남편. 눈치 보느라 말도 못 하고 있느라 예약도 못하고 있는데 큰 아이가 슬그머니 이야기한다. “엄마 이번 설에는 스키장 안 가요? 나라도 너무 타고 싶은데 한 번만 타면 안 돼요? 다녀와서 열심히 공부할게요!” 초등을 졸업하고 중등 입학을 준비하는 아이. 방학이라고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와서 종일 숙제하고 공부하며 엄마가 주는 도시락 먹는 아이의 부탁에 거절하기 미안했다. 그래도 작년의 여파로 많은 고민을 하느라 시간이 지나 어느새 구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급히 검색했지만 마감 아니면 터무니없는 가격에 포기하려는 와중 찾아낸 곳. 하이원 스키장 근처 리조트였다. 20대부터 용평스키장만 다녔던 우리에게 하이원은 처음 접하는 낯선 스키장이어서 슬로프 상황을 알지 못해 잠시 고민이 있었지만 연휴에 성수기라 다른 대안이 없었다. 미리 당근으로 구해놓은 스키도 두 세트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남편에게 이렇게 좋은 조건에 큰 아이를 위해서 한번 다녀오자고 둘째는 작년 걱정 때문인지 안 탄다고 못 박았으니 방학에 아이들과 여행을 잠시 다녀온다 생각하자고 넌지시 설득을 해봤다.
아이들이 스키를 시작한 지 3년째. 3번 만에 다시 찾은 스키장. 남편은 작년 후유증인지 만사가 귀찮은 건지 이번에는 절대 타지 않겠단다. 그러면서 스키 두 개중 큰 것은 큰아이한테 잘 맞고 작은 건 나한테 잘 맞으니 나보고 타보란다. 운동 신경도 있고 스키도 보드도 잘 타는 본인이 타지 난 보드 타다 관둔 지도 10년이 넘었고 스키는 신어본 적도 없는데? 하지만 귀 얇은 나는 설득당하고야 말았다.
스키장에 도착한 날 계속 주차가 어려워 스키장을 오르락 내리며 분노 게이지를 높여가는 남편 눈치를 보며 숙소로 갈까 하는 와중 큰 아이가 외친다 “아빠 저기 주차장 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게 들어간 지하 주차장에서 빈자리를 찾아 주차한 우리는 스키장 동태를 살피러 슬로프로 향했다. 무료로 헬멧까지 빌려준다니 슬로프도 익힐 겸 큰 아이와 스키부츠를 장착하고 슬로프 아래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곁으로 갔다. 얕은 언덕 같은 슬로프 끝에서 스키를 신고 폴대로 힘을 주어 밀어 앞으로 나가보기도 하고 큰 아들의 가르침에 따라 안전히 넘어지고 일어나는 법을 익혀 보고 나니 2~3시간이 훌쩍 지나 열이 오르고 몸이 뜨끈뜨끈해지며 말도 안 되는 용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난 보드보다 스키에 재능이 있나 보다! 한 번 해보지 머! “ 지켜보던 큰 아이도 엄마를 응원해 주며 내일 꼭 같이 타자고 매달리고 남편도 잘 탈 것 같다며 응원을 보태준다. 자신감이 하락해서 속상하던 둘째도 갑자기 용기가 났는지 조심히 안전하게 잘 탈 수 있다며 내일 엄마랑 같이 즐겁게 스키를 타보고 싶다고 한다. 이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그렇게 자신감이 하늘을 뚫었고 나의 충만한 용기로 인해 말도 안 되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 스키를 가르치고 조금 더 크면 보드를 가르쳐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게 하려 했던 것이 원래 목표였는데 갑자기 40 중턱의 아줌마가 겁도 없이 아이들 틈에 끼어서 스키를 시작하게 된 사건이 벌어진 거다. 사귈 때 처음으로 보드를 가르쳐 줬던 방식 그대로 스키를 타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전 남자 친구 현 남편. 용평은 초보자 코스가 그리 길지 않았는데 하이원 초보자 코스를 모르고 시작한 게 난관의 첫 시작인 줄 끝날 때까지 몰랐던 거다. 둘째 날 수월한 주차를 위해 다른 스키 하우스로 가자더니 산 위로 한참을 올라가 주차를 하고 슬로프로 이동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시작한 게 내 고난의 시작이 될 줄이야. 역시 모르고 시작해야 덤벼드는 것인가 보다.
스키부츠를 자신만만하게 신고 스키와 폴대를 장착하고 나서도 자신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슬로프에 들어서면서 상당히 불안하고 좋지 않게 다가오는 느낌들. 그때 멈춰야 했지만 이미 신이 난 아이들 틈에서 어기적어기적 스키를 밀며 슬로프 시작점으로 다가가면서도 그리 오랜 시간 슬로프에서 괴로운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할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샌가 스키를 타고 내려가서 흔적도 안 보이는 아이들.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경사에 당황해서 ‘나 어떻게 내려가’를 외치는 나를 뒤에서 바라보며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편. 슬로프에 들어갈 수 없다며 막아서는 직원을 사이에 두고 불안해하는 남편을 남겨두고 그렇게 나는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보드를 탈 때도 직활강은 너무 무서워 'S'자도 크게 그리며 내려왔는데 스키는 길이도 왜 이리 길고 다리도 움직이기 이렇게 힘든지 도저히 방향 전환이 되지를 않는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한쪽 끝에서 조금씩 속도를 줄여 천천히 슬로프를 내려가는 방법뿐이었다. 시작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가야 할 거리가 끝도 없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주머니에 있는 폰이 계속해서 울려대지만 꺼낼 여력도 생기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사정없이 쭉쭉 미끄러져 내려가는 스키에 갇힌 공포를 누가 알까?
왼쪽 슬로프에 있는 주황색 그물에 붙어서 내려온 게 시작이 되서인지 도저히 오른쪽 슬로프 쪽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너무 두려웠다. 살짝이라도 발이 틀리면 쭉 미끄러져 내려가는 경사가 심해지는 곳은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A자를 만들어 멈추는 자세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방법뿐이었지만 이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슬로프 양쪽 끝에 안전을 위해 설치된 튼튼한 그물이 내 유일한 의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그물에 걸린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어 기나긴 슬로프를 하루 종일 내려가야만 했다. 그렇게라도 끝까지 내려가면 다행이지!!!!
그물 아래가 깊숙이 파여있노라면 사정없이 눈 속으로 돌진하는 스키덕에 푹푹 빠지는 일도 놀랍지 않다. 오른쪽 다리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왼 다리에 힘을 주자 두 다리가 쫙 찢어지며 주저앉았는데 스키의 양 뒤쪽 끝끼리 겹쳐져 다리도 움직지이지 않고 스키 부츠도 벗겨지지 않는 난감한 상황. 다리가 꺾인 자세로 실려가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슬로프 왼쪽 끝으로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주의’ 팻말을 세우고 일부 막혀있는 구간이 나타나면 대략 난감. 나름 용기를 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끄러지다 보면 좁은 구간에서 넘어져 못 일어나 당황하기도 했고 아예 그물에 걸려 발을 빼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렇게 무사히 살아 내려온 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무심히 바라보다 다가오는 귀인들이 있었서였다. 혼자 그물에 끼여 용쓰는 아줌마를 보여도 스쳐 지나갈 법도 하건만 친절히 다가와 신발을 풀어주기도 하고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내려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서 위치를 이동해 주던 여러 천사 스키어들 덕분에 그물에 걸려가면서 미끄러져가며 긴 초보자 코스를 한 시간 넘게 내려왔다고 한다.
엄마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되어 흉한 모습으로 슬로프 구석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두 아들은 3번째 온 스키장이라고 하기에 믿어지지 않게 너무 잘 타는 게 아닌가. 심지어 둘째는 뒤에 와서 노래를 부르며 엄마 힘내! 하고 사라진다. 그렇게 아이들이 수 번을 오르내리는 동안 미끄러지면서 조금씩 천천히 목적지 스키 하우스까지 돌아오는 길이 어찌나 멀고 험난했는지. 마지막으로 꺾이는 슬로프 위에서 낯익은 스키 하우스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완만한 경사와 남편이 보이면서 드디어 내가 살았구나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한마디를 남편 눈앞에 뱉어주었다.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난 처음 탄다고 수업도 받게 돈도 내줬는데. 스키도 내가 구하고 스키도 내가 신었는데 옛날에 보드 가르쳐 준다고 데려간 것처럼 또 그냥 산꼭대기에 버려두고 가면 어쩌란 거야”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땀이 가득해진 열기 가득한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웃으며 응수한다 “겁이 많아 그렇지 보드보다 잘 어울려~ 고생했네. 쉬고 있어 물 사 올게” 그렇게 또 한 번 남편에게 조련당한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내 첫 스키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