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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Apr 08. 2024

현실과 환상 사이

세 번째 시선


물이 좋다 물이 많이 있는 곳이 좋다 강도 호수도 바다도 좋아한다. 그저 바라만 봐도 행복해서 물이 있는 곳에 가면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밝은 빛을 머금어도 어둠 속에 빠져들어도 비바람에 갇혀있어도 자연 속에 가득 채워진 물을 보고 있는 시간만큼은 마음의 평화와 도파민이 솟아오른다.


결혼 전, 서울에서 수지로 이사 온 친정집과 영통 신혼집 사이에 큰 호수와 놀이공원이 있었다. 한강에서만 보던 오리배를 탈 수 있었고 각종 놀이기구가 있던 곳이었다. 주변은 산과 논으로 둘러져있어 운치가 좋았던 그곳에 곧 아파트가 지어진다고 했다. 이 모든 풍경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지만 계획대로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호수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적하던 공간이 신도시로 변해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고 지하철까지 개통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곳에 분위기 좋고 예쁜 도서관이 지어지고 도서관과 호수 사이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원도 생겼다. 도서관을 비롯한 주변 환경에 반해 아이들과 책도 읽고 호수도 감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곳에 이제 P 그녀와 함께 왔다.




도서관은 산을 마주하고 있고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속에 현실을 잠시 벗어난 듯한 환상 속 공간이 있다. 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문이 열리고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음속에 간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세계를 마주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올 때는 비가 그쳐 햇살이 쨍하고 그림 같은 풍경이 되었지만 들어갈 때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차갑고 축축한 공기들이 가득 차있어 마치 영화 ‘트와일라잇’의 포크스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영화 속 벨라의 대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I don't really like the rain. Any cold, wet thing. I don't really..."







많은 인기를 자랑하는 이곳은 개장부터 지금까지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우연히 취소분을 발견했기에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 거다. 우리의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어 고요함 그 자체. 운 좋게 꼭대기 층에 배정되어서인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단독 별채의 느낌이 들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채워진 환상 속 힐링 공간이었다. 첫 경험임에도 만족스러워 감탄사만 연발하며 들어갔지만 어느새 그 안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들어가기 전부터 별생각 없던 나와 달리 P는 아침 첫 타임에 들어가는 데다 전날 운영을 안 해서 들어가서 추우면 어쩌나 걱정부터 한다. 미리 들어가서 난방을 틀고 싶다고 안절부절못하는데 난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우려와는 반대로 날이 스산하고 추웠지만 전체적인 난방뿐 아니라 바닥까지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들어 한기는 찾을 수 없었다. 의자가 많은데도 우리는 같이 바닥에 앉았다. 외국인과 한국인을 비교했을 때 외국인들은 소파에 앉고 한국인들은 바닥에 앉아 소파다리에 기대앉는 비교 그림이 떠올랐다. 다리가 짧고 길이가 길지 않은 테이블도 바닥에 앉는데 한몫했다. 왜? 우리는 여기 글을 쓰러 왔으니까!


P 그녀는 바로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린다. 나는 빈백을 눕히고 비스듬히 누워본다. 아이들이 좋아해 앉아볼 틈이 없던 빈백에 앉아봤다. 반은 앉고 반은 누운 느낌, 그 상태에서 바라본 창문 밖으로 너무 아름다운 바깥풍경이 고스란히 보였다. 구름은 많아도 푸른색의 맑은 하늘과 눈부신 태양 빛을 머금은 나무들까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빈둥댈 거다.” 글 안 쓰냐는 질문에 답한 뒤 바깥 풍경만 감상한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한량이 체질이라 산과 물을 벗 삼아 노래하고 춤추고 술 한잘 걸치고 시조를 읊었던 전생이 있지 않을까.





이용 시간이 종료되고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환상적인 풍경이 나를 압도하며 환영한다. 어둑하고 축축하고 답답한 날씨가 어느샌가 사라지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타국의 느낌이 물씬 나는 풍경과 마주한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이곳까지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배꼽시계가 울리니 먹고 싶은 게 생각 나는 그녀 “저기 가면 내가 좋아하는 게 있는데 너무 멀지?”



오전에 내리던 비와 구름이 걷히고 깨끗하게 얼굴을 내민 해 덕분에 한국인지 유럽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기가 막힌 장면이 연출되었다. 순간을 놓칠세라 얼른 카메라에 담아본다. 오랜만에 보는 말간 얼굴의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까지 와버린 우리는 그렇게 점심을 해결했다.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었으니 이제 내가 가보고 싶은데도 가자꾸나!


오픈부터 눈여겨봤던 서점이 이동하는 중간에 내 눈에 들어왔다. “저기야 저기 내가 가고 싶다고 한 서점!” 책도 서점도 좋아하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는 종종 독립서점을 찾아가 책도 보고 차도 마시며 구입도 했었더랬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우린 서점을 향해 직진했다. 인스타로만 만났던 서점이라 호수가 보이는 광교 중앙에 자리한 서점이 못내 궁금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한적한 곳이 아니라 놀랐고 서점 안은 시끌시끌한 밖과 달리 고요하고 상큼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서점이 궁금했던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이 서점의 주인 책방 사장님 때문이었다. 인기를 끌었던 소설 “책들의 부엌” 작가님 이기 때문. 소설을 책방에 가서 사고 작가님께 사인을 받는 게 내 목표였기에 한참을 망설였다. 서점을 가고 싶은데 오픈시간과 아이 하교 시간이 가까웠기 때문에 차를 이용해 조금은 움직여야 갈 수 있는 거리를 쉬이 움직이기 힘들었다. 혹시나 서점을 갔을 때 바쁘신 책방지기님이 부재일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반갑게 맞아주시는 작가님이자 책방주인님! 상상했던 것보다 밝고 텐션 있는 사장님 덕에 기분이 예상보다 up up 되고 있었다.


편하게 둘러보며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던 서점 ‘구름산책’. 호숫가에 햇빛을 가득 머금은 서점이라니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따스한 공간에 책이 가득 들어차고 편안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있다. 간단한 음료가까지 있으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다. 서점의 책들은 주인의 취향대로 전시되고 큐레이션 되는 것이 당연지사! 서점 방문이 더 즐거웠던 건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많았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책도 있었던 풍경보다 사장님과의 대화가 그 이유였다. 책을 판매하는 마음이 아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서로 깔깔 웃고 박수를 치고 호응하며 다양한 책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궁금했던 클래스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소설을 쓰신 이야기도 간단하지만 들려주셨다. P와 나는 서로 다른 취향 그대로 서로 다른 책을 골라 구입하고 각자 따로 사장님과 이야기도 나누었다. 전혀 다른 취향의 음료를 시키고 앉아 언젠가 이곳에 와서 같이 글을 써보자는 약속을 했다.


혼자 책을 읽던 긴 시간이 있었다. 편하게 운동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집안일을 마치고 쉬는 사람들은 왜 이 나이에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느냐 물었다. 아이들 없는 오롯한 자유를 누리며 쉬거나 즐기지 않고 고시공부하는 사람처럼 큰 배낭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가는 이유를 물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이상해 보였단다. 그들만의 휴식의 방법이 있듯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기록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 휴식이고 기쁨이다. 모든 사람의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다. 한두 사람이라도 내 마음과 같다면 그런 사람과 마음과 방법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다. 이 편안한 휴식의 과정 속에서 생각과 깨달음까지 얻는 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 아닐까 깊어가는 삶에 한 줄이 빛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A room without books is like a body without a soul.(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 - by Marcus Tullius Ci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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