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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Apr 01. 2024

마흔에 처음이에요, 마복림 떡볶이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

임신은 아닌데.. 이번에 안달복달 난 것은 신당동 떡볶이다. 왜 이리도 익숙한지 많이도 들어본 신당동 떡볶이. 도대체 신당동은 어디이며 그 맛은 어떠한가. 서울 어디매인지 감도 안 잡히는 그곳으로 열 살 아들내미와 다녀왔다. 한번 다녀왔으면 욕망이 그칠 줄 알았건만, 한 번만 더 먹고 싶다. 먼저 가족들에게 나와의 데이트권을 제공해 본다. 남편은 맛없다고 안 간단다. 큰아들은 거기까지 왜 가야 하냔다. 둘째가 가장 무서운 반응이다. "콜! 엄마, 우리 언제 갈까?" 잠시만. 엄마 다른 사람도 좀 알아볼게.


J 언니를 만나 밑도 끝도 없이 소리친다.

"신당동 떡볶이 먹고 싶어!"

"(질색팔색) 야, 아주 질리도록 먹었다."

어릴 때 춤을 추며 허구한 날 신당동을 갔다는 그녀,

결혼 후 남편님이 좋아해서 자주 갔단다.

결국 나 혼자 다녀와야 하나.

"근데 신당동 떡볶이는 무슨 맛일까?"

"근데 왜 그렇게 인기 있는 걸까? 뭣 때문에?"

계속 떠들어대니

"아유, 이 찡찡이 계속 찡찡거려 한번 데리고 갔다 와야겠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동행을 구했다.


월요일 아침, 보무도 당당히, 비장하게 나선다. 수원에서부터 광역버스를 타고 70분을 내달려 을지로입구에 내린다. 을지로입구랑 서울역, 이 일대는 길치여부를 판독하는 곳이다. 서울역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리 지하도와 횡단보도를 건너도 서울역에 닿지 못한 지방러들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고생기를 숱하게 들었다. 을지로는 입구가 왜 이리 많은지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다. 그러나 내겐 J, 그녀가 있다. 주말마다 초등 아들 둘을 데리고 버스 타고 이곳에 와 청계천과 동대문일대(그 두 장소가 걸어서 이동가능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를 종횡무진한 그녀! 처음 가는 길도 핸드폰 지도 하나면 거뜬없는 그녀이니 하물며 매주 가던 을지로입구 일대야! 내리자마자 척하면 척 어디로 가야 할지 다음 버스 탈 곳을 잘도 찾아간다. 나는 그저 쫄래쫄래 그녀 옆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가는 내내 여뭐가 있고 저뭐가 있고, 구구절절 설명해준다. 오호, 머릿속은 오로지 떡볶인데.. 무슨 떡볶이집이 아침 9시부터 문을 열며, 시간에 거길 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했는데 아침 10시에 도착한 그곳엔 벌써 몇몇 테이블을 선점하고 있었다. 이곳은 이름도 유명한 마. 복. 림. 할머니 집.


작년에 여행했던 유럽 식당에선, 자리에 앉아 눈을 부라리며 아이컨택에 최선을 다해야 주문을 받으러 왔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 세팅되고 음식이 나오곤 했다. 이곳은 다르다. 자리에 앉자마자 "2명이죠" "네" 대답과 동시에 뻥 좀 보태서 0.1초 만에 음식이 세팅. 복림이 할머니는 유럽가지 마세요, 주문하다 화병 생겨요. 한국인 정서에 최적화된 속도로 음식이 세팅되면 보글보글 끓길 기다린다. 세팅이 너무 빨리 돼서 상대적으로 끓는 시간이 억겁의 시간 같다. 애들이랑 먹으면 라면 면을 애들이 다 먹을까 봐, 내 것을 사수하느라 신경이 곤두섰을 텐데, 앗싸 그녀는 라면면이 싫다고 하셨어. 쫄면면은 또 어찌나 탱글탱글한지. 맛은, 어떤 유튜버는 너무 슴슴하고 건강한 맛이라고 표현했던데 난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요즘 떡볶이들은 너무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슴슴하니 순하게 매운맛이랄까? 할머니가 구들장에서 끓여주는 누룽지가 생각나는 맛이다. 누룽지 같은 맛은 아니고 고런 느낌.


마복림 할머니네


다 먹고 D.D.P라는 곳까지 걸어보잔다. 가는 길에 서울의 4대문(?) 같이 생긴 머시깽이가 있다며 머라 머라 설명해 준다. 아까는 떡볶이 먹을 생각에 안 들렸는데 지금은 배가 불러서 안 들린다. D.D.R도 아니고(이거 아는 사람) D.M.Z도 아니고, D.D.P가 뭔지 또 설명해 준다. 참 친절해 이 언니. 언니를 구경하며 웬 커다란 인형이 길바닥에 있길래 한번 만져주고, 오 여기가 청계천이랑 이어지다니 너무 신기하고. 서울이 이렇게 생겼구나. 도대체 청계천에 많은 상점들이 있다는데 어디에 있다는 걸까 늘 궁금했는데 그게 바로 여기였다. 하천으로 내려가니 어머나, 여기 물고기도 살고 두루미? 청둥오리? 이런 것도 살고. 허허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갱이하네" 노래가 절로 나오네. 여기가 바로 한양이렸다. J 언니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방원이었나 이성계였나 암튼 세종대왕의 아빠라고 한 거 같은데 아무튼 어떤 아빠가 갖다 놨다던 돌멩이 얘기도 해주고, 참 아는 거 많아 이 언니...


D.D.R 아니고 D.D.P / 무슨 큰 인형 / 청계천


완연한 봄기운을 시샘하며 고집불통 겨울영감이 담뱃잎을 피워댄다. 퐁뇌프 다리에서 세느강 내려보듯 낭만을 누리고 싶었는데 청계천 다리 위 줄지어 오르는 담배연기에 서둘러 그곳을 지나쳐 왔다. 그래도 40년 만에 처음 알게 된 한양 지리와 역사 이야기에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거닐었다. 떡볶이가 불러온 한양 나들이, 좋은 벗과 함께하니 이 아니 좋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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