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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May 03. 2021

퇴근길, 내 옆자리 그 사람이
부러웠다면

세상의 어둠으로 삶을 돌아보고 싶다면 ⑥ 브라질 리우의 파벨라


브라질 여행을 꿈꾸게 된 계기는 특이하게도 빈민촌인 ‘파벨라’의 존재 때문이었다. 2016년 여름, 저예산의 우려를 깨고 화려한 연출로 호평을 받은 리우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마치 한 편의 공연을 감상하듯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보사노바의 선율이 잔잔히 흘러나온 후 다채로운 색깔을 뽐내며 역동적 무대로 변신한 파벨라가 왠지 모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8년 2월, 드디어 내 마음을 사로잡은 파벨라의 장소 브라질 리우 땅을 밟았다. 하지만 그곳은 혼자서 쉽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에 투어사를 통하여 방문해야 했다. ‘들꽃’이라는 뜻의 예쁜 그 이름과는 달리, 실상 마약상과 갱단이 살고 있어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파벨라의 거주 인구가 2010년 기준 브라질 전체의 6%를 차지하고 리우의 경우 25%를 차지한다고 한다. 리우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남미에서는 두 번째로 큰 ‘호싱냐 파벨라’에는 20만 명이, 이번에 내가 방문한 ‘산타 마르타 파벨라’에는 약 7천 명이 살고 있다. 이쯤 되면 리우에서 파벨라는 특정 구역이라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거주 공간이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파벨라 초입에 위치한 투어사 부스 앞에 도착했다. 부스 안의 직원들과 투어에 동행할 현지 가이드도 모두 이 곳 파벨라 출신이라고 했다. 영어로 진행하는 외부에서 온 가이드는 이 투어가 ‘가난’이 아니라 ‘문화’를 보여준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시작했다. ‘Poor’와 ‘Tourism’을 합친 ‘푸어리즘’은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투어를 통해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관광객이 지불한 요금이 빈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브라질 정부도 손을 놓았다는 ‘파벨라’인데 적어도 이 투어에 참여한 관광객들도 관심을 갖고 함께 개선 방안을 찾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 포함 총 다섯 명의 관광객 앞 뒤로 영어 진행 가이드와 파벨라 출신 현지 가이드가 대동하여 파벨라에 진입했다. 대로에서 몇 발자국 걷자마자 금세 파벨라에 들어서니 긴장되기 시작했다. 가이드에게 정말 안전한 것이냐고 물으니 ‘범죄는 범죄자들의 숙소인 이 안이 아니라 밖에서 일어난다’고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진짜 총과 칼이 난무하는 곳이라면 아예 투어를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소 흐트러진 차림새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편 좁고 가파른 계단 곳곳에 오물이 버려져 있고 악취가 나 빈민촌에 왔음을 실감했다. 원래 파벨라는 단조로운 나무나 콘크리트로 지어졌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젊은 예술가 두 명이 파벨라의 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알록달록 도색 작업을 하여 지금처럼 파스텔톤의 매력적인 외관으로 변신하게 된 것다. 이처럼 밝아진 환경은 범죄율 감소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파벨라를 배경으로 영화 '시티 오브 갓'과 같은 예술 작품이 탄생했고, 특히 이 곳 ‘산타 마르타 파벨라’는 ‘분노의 질주 5’에 등장했으며 1996년에는 마이클 잭슨의 ‘They don’t care about us’의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이기도 하여 마을 한가운데 ‘마이클 잭슨 광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너무 위험하기에 투어로도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평화롭고 안전해 보였다. 사실 투어를 통해 방문한 구역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정돈된 일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안전한 투어에서도 알게 모르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나는 진짜 생생한 파벨라의 속살까지 볼 자신은 없었다. 투어가 끝나고 파벨라를 벗어나자 금세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가 펼쳐지는데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오히려 나를 지켜주던(?) 가이드들 없이 혼자 숙소로 걸어오는 길이 더 무서웠던 아이러니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파벨라의 고지대에서 도심의 전망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여기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 모든 열악한 조건을 극복하고 가난의 고리를 끊겠다는 치열한 의지가 내게 있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좁고 지저분한 계단에 앉아서 무기력하게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던 한 청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욕심도 불만도 참 많았던 지난 나의 모습들을 돌아보니, 세상에는 기본적인 생활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도 사실 내 노력이 배제된 행운이었을 뿐, 내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 2018년 2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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