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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19. 2018

[사직동 그가게 작은 책방] 첫 번째 만남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첫번째 후원의 흐름

어린이작가들의 그림책이 흘러 흘러 닿은 곳, 사직동 그가게 작은 책방.


작은 책방 활동가로 함께할 여섯 명이 사직동 그가게에 모였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날아와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는 빼마(돕는 이, 친구를 뜻하는 티베트말)와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카페지기가 도란 도란 마주 앉았다.

사직동 그가게는 북적북적 소란스러웠다. 티벳식 두꺼천으로 된 중문이 쉴 새 없이 펄럭이며 카페지기들이 부산스럽게 드나들었고, 난로 곁을 조금만 벗어나면 손끝 발끝이 시려와 엉덩이를 가까이 당겨 모여앉게 되었다. 환하고 맑은 인상에 관록이 묻어나는 빼마는 우리와 함께 회의를 하면서 수시로 부엌을 향하여 커리의 맛을 봐주고 안팎의 살림을 관장했다. 주방으로부터 배어나는 진한 커리향과 짜이의 생강향이 사방에 자욱하게 스며들자 이 공간이 내게 나직이 말을 건넨다. "어서와, 여긴 공기가 조금 다를거야."

책방지기들과 서로에 대해 소개하면서 빼마는 어떻게 이 일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느냐 물었다.
"멋있잖아요, 사직동 그가게. 홍상수 영화에도 나온 곳이고... 이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것, 느낌 있잖아요."
"이 친구가 권했는데 저야 시간도 많고, 딱히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두 마디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낯설고 신선한 공기가 코끝으로 훅 밀려든다. 자욱한 짜이향이 다시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거봐, 여긴 공기가 다를 거라니까."

이는 내가 살고 있는 어른의 세계에선 도무지 듣기 힘든 대답이었다. 모든 자리의 첫 마디가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 주시어 감사하오며'로 시작되는 어른의 세계 첫번째 금기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바쁘지 않은 어른은 아무도 없다. 바쁜 것은 미덕이요 시간이 넘쳐흐르는 것은 죄악이다. 설사 집에선 쇼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쥐고 뒹굴지라도 밖에선(공식적으론) 늘상 바쁘고 시간이 없으며 내 갈길에 바빠야 하는 것이 어른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철칙이 아니던가. 그저 시간이 많기에 어떤 일을 시도해 본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가 내게 너무도 솔직해서 낯설게 들렸다.

'멋있고 느낌있어서'라는 말 역시 어른의 세계 두번째 금기어를 깨고 있다. 어른의 세계에선 어떤 일을 시작하고 추진하는 데에는 항상 명분이 필요했다.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이며 나의 동기와 명분과 여건이 이에 부합하는지를 재고 따지는 것이 늘상 익숙했다. 설사 속으론 그저 '뽀대있어 보여' 동참했을지라도 밖으론(공식적으론) 그럴듯한 명분과 합당한 이유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철칙이 아니던가. 아니, 그럴듯한 명분과 지당한 이유를 찾더라도 '꼭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엉덩이를 일으켜 실천하는 이가 많지 않은 세계. 그저 멋있고 느낌이 있기에 어떤 일을 시도해 본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 역시 내게 너무도 솔직해서 낯선 이야기였다.


"제 여러가지 꿈 중에 하나가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라서요."

"책으로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마음을 보태고 싶어서요. 어린이작가들의 그림책으로 모아진 후원금을 흘려보내줄 곳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록빠라는 공간으로 흘러 흘러 닿았다.

티베트 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자립'을 후원하는 단체, 자발적인 자원활동으로 몇 년간 인도 다람살라와 한국의 서울을 가로질러 운영되고 있는 록빠라는 공간, 나는 무엇보다 이 공간의 자발성과 오랜 지속성이 경이로웠다.  

빼마는 이 공간에 배어든 그 '다른 공기'를 품에 지니고 다니며 여러 사람들에게 힘껏 불어넣어주는 사람이었다. 아니, '불어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녀와 함께 존재하고 있노라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이 '다른 공기'가 자연스럽게 불어넣어지는 것 같이 느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겠다. 그것은 편견과 허례허식 없는 편안함, 더불어 함께하는 경험적 지혜, 그리고 긍정적이고 당찬 에너지가 사려깊게 어우러진 신선한 공기였다.

어린이 그리고 책에 대해 그녀의 록빠와 나의 통로를 통해 각자가 품어온 것들을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날카롭게 반짝였다. 그 기대에 찬 눈빛을 주고 받으며 나는 그녀와 깊은 이야기들을 이어가게 될 것을 직감했다. 통로의 책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을 읽고 빼마가 보내준 메일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모았다.

"참 해온 일도 대단하지만, 그 이면에 혼자서 얼마나 고생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기에 그래서 기특하다는 말이 나오나봐요.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고생스러움을 수고스럽다 생각하지 않고 재밌다 표현하지만요. 재미와 재미가 이렇게 만났네요. 우리들에게 어떤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지 절로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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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재미가 만났네요. 어떤 모양새와 깊이로 함께하게 될지 모르지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서로가 만나는 지점 만큼... 그렇게 찐하게 함께해요!"


그렇게...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첫번째 후원의 흐름이 사직동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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