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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21. 2018

[뉴욕서점에서 만나다] 어떤 책공간은 안도감을 준다

반면 어떤 책공간은 나를 압도(아니 압박)한다

                                                                                                   

프롤로그


  어느 날부터 서점 안에 들어서는 것에 현기증을 느꼈다. 바닥부터 천정까지 책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에 신간은 매일같이 쏟아졌다. 잘 나가는 책들은 얼굴을 보이며 당당히 눕고 안 나가는 책들은 등을 보인 채 꽂혀졌다. 흡사 창문이 없는 백화점에 갔을 때와 같은 심정이다. 그 공간에서 나는 독자가 아닌 '책 소비자'가 되어 소비 트렌드에 발맞추어 뛰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백화점의 가방이나 화장품은 쿨 하게 솎아낼 수 있다. 그러나 책에는 그렇지 못하다. 미련을 갖게 된다. 
     
  신뢰하는 작가의 신작을 펼쳐들 때 가슴이 벅차다. 주옥같은 한 구절과 만날 때 꾹 눌러 그은 밑줄처럼 내 영혼에도 자국이 남는다. 한 권의 책을 품고 책에서 책으로 꼬리를 물어갈 때 지적 충만함이 차오른다. 그런 것들을 포기할 수 없기에 '나의 한 권'을 찾아 그 밀려드는 홍수 속을 헤매게 된다. 현기증이 나다가도 한 번 더 믿어볼까, 한 번 더 속아볼까 하는 간절함으로 책 더미를 뒤적인다.
     
  그러다 어떤 책 공간을 만나면 안도감을 느낀다. 눅눅한 냄새가 코에 들어오고, 서가의 조도에 마음이 녹아들어가며, 손끝에 만져지는 종이의 질감과 사각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머문다. 때로 거실 만 한 크기의 작은 서점이기도 했고 때로 천정이 높은 웅장한 도서관이기도 했다. 그런 공간에 들어서면 내 유년의 시간이 떠올라 온기가 느껴졌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몰두하는 시간에 대한 경애, 책에 대한 동경, 엉덩이 붙이고 나 자신과 씨름하는 시간에 대한 애틋함, 종이의 촉감과 냄새가 주는 안도감…. 이런 것들이 감정의 촉수를 건드렸다. 특히나 낯선 여행지에서 이런 책 공간을 만나면 그 애틋함과 안도감은 극대화 되었다. 미술관에서 하염없이 그림을 바라보며 내 영혼과 교감하는 '단 한 작품, 한 순간'을 갈망하듯 나는 책 공간에서 책을 펼치며 '단 한 권, 한 장면'과 교감했다.
     
  뉴욕 여행을 계획하면서 미련 없는 것들을 솎아내었다. 책 공간과 뮤지엄, 그 두 가지면 내게 충분했다. 그것만 하기 에도 부족했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록펠러센터엔 들를 시간이 없었고 면세점에선 립스틱 하나 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가방 한가득 책을 이고지고 돌아다녔다. 손가락 클릭 하나면 amzon.com 에서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책이든 안방으로 배송 받을 수 있고 웬만한 책들은 한국어 번역본이 금방 만들어져 나온다. 하지만 어떤 책은 그 책을 만난 공간과 함께 기억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묵직한 가방을 가득 채워 돌아다녔다.
     
  어떤 경우 책 한 권과의 만남을 넘어선 공간 그 자체와의 만남이 내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책 공간에서 만난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연약하고 옹졸한 본연의 나를 직면하기도 했다. 우연히 참가한 북 런칭을 통해 내가 꿈꾸는 책 공간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문을 닫은 서점 앞에서 만나고 싶었던 작가의 책을 웹사이트로 찾아내어 대만에서 국제 배송하는 집요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고민하다 내려놓고 온 책이 끝내 눈에 밟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다시 amzon.com으로 국제 배송하는 몹쓸 짓도 했다. 그렇게 여름날 뉴욕에서 만났던 책 공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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