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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18. 2018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Who We Are] 우리를 가까이 가게 한 그림책

                                                                                                                          

우리를 가까이 가게 한 그림책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내가 세상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여행 작가 오소희와 그녀의 아들 중빈, 그리고 어린이작가들이 ‘작가와의 만남’으로 만났다. 어린이작가들에게 창작의 시작을 격려하면서 “이 친구도 여러분처럼 초등학생 때 이렇게 멋진 책을 낸 어린이작가란다”라고 중빈 군의 책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을 소개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행 작가인 엄마와 함께 90일간 남미 여행을 하면서 쓴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고 하니 아이들은 말한다.

“우와, 여행을 그렇게나 길게 가고 부자인가보다”, 
“선생님, 저는 해외여행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부러워요”, 
“그런 엄마 있어서 좋겠다. 우리 엄마는 비행기도 안 타봤대요”, 
“돈 얼마 있으면 해외여행 다닐 수 있어요? 근데 남미라는 데가 도대체 어디예요?” 

노란 책을 들고 아이들 앞에 선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이들에게 부러움과 박탈감만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명확하게 아이들 마음에 가서 닿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책 속의 한 구절을 꽉 붙잡았다. “나도 세상을 기억으로 가져가지만, 나도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다.” 수업을 이어가면서 나는 줄곧 어린 중빈 군이 세상에게 주고 온 것들을 이야기했다. 여행을 하는 ‘다른 방법’에 주목한 것이다.

“얘들아 우리 반에 축구 좋아하는 아이들 있지? 남미의 아이들도 비슷한가봐. 축구공을 땅바닥에 툭 던져놓기만 해도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몰려와서 금세 친구가 된대. 중빈이는 여행가서 축구공으로 동네 애들이랑 신나게 공차면서 친구가 되고, 실컷 놀고 나면 그 축구공을 선물로 주고 왔다는구나.”

여행 작가 오소희는 여행의 여정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1단계는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보는 것이다. 2단계는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3단계는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4단계는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 것을 나눌 수 있는 여행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다.


놀러가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던
여행
그런데
다른 방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남을 도와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재능을 기부해주는
그러한
보람찬 여행
그런 여행도 있다고 한다.
(11세 독자의 감상)
여행을 가면 대부분
보고 오려고 하지만
나는 여행지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무언가를 주고 와야겠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보고 오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올 수도 있다.
(11세 독자의 감상)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내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나누고 시를 쓰는 수업을 했다. 우리는 왜 무언가를 주고 오는 ‘다른 방식’의 여행과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걸까? 한 아이는 이에 대해 세상이 우리에게 ‘큰 것’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조그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크고 무엇이 조그만 할까.


세상은 나에게
큰 것을 주었다
화목한 우리 가족
행복한 우정
재미있는 학교생활
친절한 우리 선생님

세상에게 내가 주는 것은
조그마하다
기쁜 웃음
서툰 공연
노력한 내가 만든 책
마음으로 준비한 악기

세상이 나에게 준 것
내가 세상에게 준 것
(11세 독자의 감상)



선생님, 책이 없는 나라도 있대요
한 어린이작가는 어느 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책이 없는 나라도 있대요. 우리가 만든 책 보내주면 안 돼요?” 자신이 직접 창작한 그림책을 다른 나라의 어려운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한 고아원에 보낼 기증 물품을 모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어린이작가들과 창작한 그림책을 떠올렸다. 아이가 내게 했던 “책이 없는 나라도 있대요”라는 한 마디의 말은 이를 실행에 옮기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친구들에게 책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림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린이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그림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림책을 창작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지도교사가 대신 해주거나 번역가에게 맡겨 뚝딱 해내는 것보다는 협력의 과정을 직접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교 원어민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도움을 주셨다. 어린이작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번역한 결과물을 영어 학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감수를 부탁하여 좀 더 매끈하게 다듬었다. 



한 땀 한 땀 정성의 과정이 녹아들어갔기에 아이들은 자신의 책을 더욱 자랑스럽고 소중한 것으로 여겼다. 인도네시아의 친구들에게 작가로서 보내는 편지를 써서 책에 첨부한 아이가 있는가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흐뭇해하실 것 같다며 한글과 영어 두 언어로 된 자신의 책을 납골당에 넣어드린 아이도 있었다. 협력하는 그 과정 자체가 가슴 벅차는 시간이었다.





강물처럼 흘러간 우리들의 이야기
그렇게 인도네시아 우붓의 한 고아원에 어린이작가들이 창작한 ‘교실 속 그림책’ 영어 번역본 열세 권을 기증하였다. 그리고 고아원의 아이들과 그림책 창작 수업을 진행하였다. 이곳의 이름은 ‘페르마타 하티’Permata Hati로 작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고,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의 연령대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우붓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열심히 번역해서 가져간 열세 권의 창작 그림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그림책 창작 수업이 시작되자 그 어떤 책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묻는 여섯 페이지의 온전한 빈 종이를 더욱 반가워했다.


나는 그 빈 종이를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을 향해 활짝 열어젖힌 마음의 창을 만났을 때, 아이들은 가진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산하였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 물어보아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유쾌하게 쏟아내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누군가가 쓴 책을 보여주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묻고 들어주는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보여준 세계는 진솔하고 유쾌했고 우붓 특유의 신선한 색감까지 담고 있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쓰고 그린 우리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다시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책으로 다시 만나자!” 그렇게 마지막 작별을 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책’을 선물하기 위해 중빈 군은 펀딩을 진행해주었다. 모금 44시간 만에 목표 금액이었던 50만 원을 훨씬 넘긴 81만 원의 마음이 모아졌다. 이틀간 후두둑 후두둑 쏟아지는 ‘사랑비’ 세례를 받다보니 시원한 여름 소낙비를 맞아 온몸이 흠뻑 적셔진 기분이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쓰고 그린 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냐면 말이지” 하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느낌을 살려 책의 제목을 ‘Who We Are - Permata Hati Story’로 정했다. 자신을 담은 이 한 권의 책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긍지의 어깨를 쭉 펼칠 수 있게 하길 소망했다. 나아가 고아원을 후원하고자 문 두드리는 이들과 페르마타 하티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통해 아이들 자신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들의 그림책 제작을 위해 마음을 모아주시는 분들께 작게나마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서 책에 포함된 그림 중 다섯 컷은 엽서로도 제작했다. 작고 예쁜 엽서를 통해 누군가의 가슴속에 의미가 만들어져 또 다른 선한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했다. 펀딩에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께서는 다음과 같은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 세상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답니다. 많이 만나세요.
- 그 환하고 밝은 웃음에 제가 치유를 받습니다. 고마워요.
- 여전히 꿈을 꾸는 아줌마가 이제 꿈꾸기를 시작하는 그대를 격렬히 응원합니다!
- 아이들에게 여러분의 꿈과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감사합니다.
- 언젠가 만나러 갈 겁니다! I'll be there!
- Love your life and l am proud of you.


이 촉촉한 마음들이 모여 다시 아이들에게로 흘러갔다. 이 그림책은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어린이작가들이 언어와 나이,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꿈이 흘러갈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린이작가들의 삶 속에 또 하나의 의미가 만들어졌다. 한 어린이작가는 이에 대해 “내 이야기가 강물처럼 멀리멀리 흘러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표현했다. 스스로에 대해 골몰하며 쓰고 그린 ‘자기만의 책’을 갖는 경험, 그리고 자신이 흘려보낸 작은 이야기가 다른 나라의 독자 친구에게 굽이굽이 흘러가는 여정을 경험하는 것은 어린이작가들에게 무엇보다 값진 기쁨과 감동이 되었다. 내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그림책, 진정성이 담긴 책 한 권을 가지고 소통할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페르마타 하티의 원장 아유가 전하는 말이다.



산을 딛고 일어설 힘, Who We Are!
우리는 아이들에게 되도록 힘든 산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산을 딛고 일어설 힘을 길러주기보다 어떻게든 산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에서 함께 했던 그림책 창작 수업을 통해서 나는 자신이 만난 산을 피하지 않는 아이를 만났다. 자신의 산을 딛고 일어설 용기, 그 용기만큼의 힘을 가진 아이의 이름은 타미였다. 타미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큰 오빠가 생계를 책임지는 형편이었다. 매일매일 자신의 슬픔과 용감하게 싸우는 아이 타미는 자신의 책에 커다란 산을 그려놓고 이렇게 썼다. “I am strong, so I can stand on MOUNTAIN.” (나는 강하다, 그래서 나는 산을 딛고 설 수 있다.)



자신의 삶과 용감하고 씩씩하게 싸워나가기 위해 몇 번이고 되뇌었을 타미의 그 한 마디가 내게로 와서 마음을 적신다. 그렇다. 우리는 산을 만나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다. 세상은 열여섯 살 난 이 아이를 작고 약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녀에게는 태산 같은 장애물을 감당할 힘과 잠재력을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Who we are)’를 바라보고 아는 것이다. 세상이 규정한 내가 아닌 우뚝 선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맞아, 너는 강해. 그리고 나는 강해. 나도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산을 너처럼 용감하게 딛고 설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오를게.’ 나는 한동안 멈춰 서서 타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렇게 각자의 산을 올라 어느덧 정상을 딛고 우뚝 섰을 때 우리는 서로의 봉우리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멀찍이 우뚝 선 서로를 바라보며 바람에 땀을 식히는 어느 날, 결코 약하지 않은 나 자신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 해준 타미와 눈을 맞추며 나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의 구입을 문의하셨던 분들, 독자가 되어주시길 원하는 분들께 안내드릴게요.
이 책을 구입하기 원하시는 분들께 '만원의 행복'으로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소량인쇄했기에) 1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갔으므로 사실상 인쇄비용보다 적은 금액이에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독립출판사는 교사의 자비 부담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아요.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의 창작그림책을 비매품으로 출판등록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책으로 보다 의미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일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총230권 한정판으로 출간한 책 중에서 현재까지 책을 구매해 주신분들께서 보내주신 금액이 벌써 70만원이 넘었어요.
독자들의 품으로 간 책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 성함과 주소를 남겨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MbxbXrEGb6YKsZ6B2q3dNz-MQq5XvTuizlM42Gv6qo7llg/viewform?usp=sf_link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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