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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17. 2018

“불편한 것들에 더욱 가까이 가세요.”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한 발짝 내딛는 여행법

저를 포함한 많은 여행자들의 가슴을 울린 그림책입니다.

어린이작가 최지윤을 만난 이후 저는 어딜 가든지 ‘불편한 순간’을 감지하는 촉수가 더욱 예민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촉수로 캐나다 캘거리의 인디언, 시리아의 난민 어린이, 그리고 호텔의 욕실 바닥을 바라보며 쓴 글입니다.


한 발짝 내딛는 여행법
“불편한 것들에 더욱 가까이 가세요.”

작은 것에 머뭇거릴 줄 아는 마음
여행을 하다보면 마음을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들을 만난다. 어린이작가 최지윤의 글을 읽으면서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현지인의 어려운 현실을 보게 되는 순간, 여행에 대한 환상으로 포장되었던 것들과 실제 현지 사정의 간극을 확인하는 순간. 그럴 때 우리는 애써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행복해야 하는 나의 여행을 이런 것들로 우울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아름다운 것들에만 집중하자고.”

어린이작가 최지윤은 ‘가까이 가지 못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마음을 머뭇거리게 한 것은 가이드 아저씨가 했던 한 마디의 말이었다. 행색이 초라한 현지의 아이들에게 가이드 아저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아이들, 냄새나고 더러우니까 가까이 가지 마세요.” 그 한 마디는 아이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했다. 그녀는 여행비용에 ‘남을 무시할 권리’마저 포함된 것처럼 행동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묻는다. 그녀는 말한다. “한국말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아마 다 느꼈을 거예요. 그 표정, 그 손짓, 그 눈빛……” 그리고 여행의 슬픈 이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는 작은 것, 약한 것에 마음을 둘 줄 안다. 그녀가 전해준 울림은 독자로 하여금 저마다 ‘가까이 가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까?
어린이작가 최지윤이 던진 화두에 독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까? 어린이 독자들은 ‘가까이 가지 말라’는 어른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가지 말아야 할까?
고민이 된다
내가 가야할지 가지 말아야 할지
과연 가까이 가면 안 될까?
가까이 가면 큰일 날까?
(13세 독자의 감상)
가까이 가지 마
걘 너랑 사는 게 달라
가까이 가지 마
너한테 좋을 거 없어
그리 다르지 않은데…….
다른 게 틀린 건 아닌데…….
(13세 독자의 감상)

이 그림책은 아이들을 고민하게 한다. 지구 한 쪽에서는 비만으로 다이어트 음료는 마시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제발 다가와 달라”는 목소리를 듣게 한다. “나만 편하면 되는 거 아닐까” 고민하면서 가까이 가야할지 말지를 놓고 저울질하던 아이는 스스로에게 한없는 초라함을 느낀다. 그를 격려하는 한 독자는 “이상해도 더러워도 가까이 가도 된다”고 말한다.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까?
도와주어야 할까?
나만 편하면 되는 거 아닐까?
고민하는 사이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13세 독자의 감상)
가까이 가세요
이상해도 더러워도
가까이 가세요
그래도 됩니다
(13세 독자의 감상)

가까이 가세요, 인디언들에게
어린이작가 최지윤의 글을 만난 이후 나는 어딜 가든지 이 ‘불편한 순간’을 감지하는 촉수가 더욱 예민해지고 말았다. 그건 분명 여행을 힘들게 한다. 여행지에서의 기쁨을 마냥 해맑게 ‘하하, 호호’ 하며 누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캘거리 국제공항에 있는 원주민 복장을 한 인형 기념품이 불편했다. 샌디에이고 발보아 파크에서 들른 ‘인류박물관’이 불편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원주민들을 보호구역에 가두어두고 있지만 관광 상품의 콘셉트로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캘거리에서 밴프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로키산맥 자락의 드넓은 벌판 위에 ‘격리’되어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을 보았다. 운전해주신 분께서 설명해주신 바에 의하면 이들은 캐나다 정부의 원주민정책으로 정부지원금을 받고 세금도 면제받지만 그 혜택을 위해 이 구역에 살아야 하며 노동으로 경제적인 자립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보호구역 내에는 받은 연금을 마음껏 쓰도록 하는 카지노가 있었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내가 캐나다를 다녀간 이듬해인 2015년, 마을 전체 주민이 2000명에 불과한 온타리오주 애터워피스컷 마을에서 10개월간 스스로 죽음을 시도한 주민만 100명을 넘겼다고 한다.

밴프 국립공원에서 일정을 마치고 다운타운 쪽에서 캘거리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몇 년 만의 재회에 감격하며 우리는 프린스 아일랜드 공원에서 강을 바라보며 함께 걸었다. 밴프에서 발을 담갔던 보bow 강줄기는 산맥을 따라 흘러 그곳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지인은 손가락으로 벤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디언이다, 저쪽.” 인디언은 보호구역에만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던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인디언이 이런 공원에도 막 다니는 거야? 언니 자주 봤어?” 캘거리에 수년째 살고 있는 지인은 인디언을 종종 본다고 했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나는 벤치 쪽을 바라다보았다. 그는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책의 도판에서 보았던 것처럼) 저분도 머리를 길렀구나.
(내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저분은 ‘인디언다운’ 옷이 아닌 후드티를 입고 있구나.
(내가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저분도 갈색의 약간 붉은 피부를 가지고 있구나.
(내가 신문에서 읽었던 것처럼) 저분도 지원금을 가지고 도박이나 마약을 할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길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자각했던 것이다. 내가 인디언과 만난 것은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이러한 편견을 갖게 된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가 인디언을 보면서 떠올렸던 것은 샌디에이고 발보아 파크에 갔을 때 인류박물관에서 보았던 박제된 전시물들이었다. 이 박물관은 인디언의 삶을 화석이나 공룡의 뼈와 같은 범주에 두고 있었다.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고대의 유물과 같이 놓인 그들의 삶은 관람자로 하여금 인디언의 현존을 부정하게 하며 현재 그들이 처한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게 만들었다. 박물관 어디에도 지금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과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보호구역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인디언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신화적인 존재로서의 인디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을 넘은 미술』에서 린다 와인트라웁은 “미국 원주민들이 겪고 있는 곤경은 한편으로는 편견에서 기인하지만 이상화 역시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박제되어 있는 자신의 삶을 인디언 자신이 직접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30년 동안 살았던 예술가 제임스 루나는 자신의 작품 <Action and REaction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인디언이 되고 싶다. 문화를 가졌다고 말하고 싶어서.
모든 사람들은 인디언이 되고 싶다. 영적이고 싶어서.
모든 사람들은 인디언이 되고 싶다. 재정적으로 후원받고 싶어서.
모든 사람들은 인디언이 되고 싶다. 희생양이 되고 싶어서.
모든 사람들은 인디언이 되고 싶다. 다문화적이고 싶어서.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투영하여 만들어낸 인디언, 이에 대해 그는 더 이상 역사적인 이유로, 상업적인 이유로, 그리고 ‘감상적인 이유로’ 인디언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날 프린스 아일랜드 공원에서 우연히 만났던 인디언은 보호구역이나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캘거리 다운타운의 공원에서 2014년의 여름 햇살을 받고 있던 ‘진짜 인디언’이었다. 그러나 편견으로 가득 채워진 시선으로 그를 ‘박제된 박물관 속 신화’ 보듯 요리조리 훑어보는 것이 부끄러웠던 나는, 결국 진짜였던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


가까이 가세요,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게
2014년의 1월,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서 리코더 부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가녀린 품에 어린 동생을 안고 현란한 손놀림을 선보였다. 입으로 부지런히 리코더를 불고 손가락을 놀리는 와중에도 야무진 눈동자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리코더 선율에 담긴 것은 청명함과 감미로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긴박감과 간절함이었다. 여덟 살 아이가 만드는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그 몰아붙이는 전투적인 손놀림을 홀린 듯 쳐다보다가 품에 안긴 동생의 끔뻑이는 눈망울과 마음이 마주쳤다.

“요즘 시리아 난민들이 그렇게 터키로 대거 몰려들어 온다잖아.”
“난민 문제, 안타까운 일이지.”
일행들의 대화에 귀를 세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마주친 그 눈망울이 채 떼어지지 않아 자꾸만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한참을 고개를 뒤로 한 채 질질 끌리듯 걷다가 인파에 이리저리 어깨를 부딪치며 어느 순간 실이 ‘탁’ 끊기듯 그와 교신이 끊겼다.

허공에 마음이 머무는 정적의 순간, 그러나 나는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주저하는 시선을 애써 거두고 걸었다. 다만 그곳에서 우리는 지인들에게 선물할 터키쉬 딜라이트를 서너 박스씩 사서 양손에 가득 들었을 뿐이다. 달콤하게 녹아드는 로쿰 조각을 입에 하나씩 물고서 우리는 다음 행선지가 선사할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광경들을 향해 여느 때처럼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터키에서 돌아온 지 1년 하고 9개월이 지났을 때, 무심코 펼친 신문에서 나는 그 눈망울을 다시 만났다. 시리아 내전으로 가족과 함께 그리스 코스 섬으로 가려다 배가 난파해 사망한 아이. 빨간 옷에 청색 반바지를 입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터키 해안가 모래사장에 얼굴을 반쯤 파묻은 채 죽어 있는 사진이었다. 아이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에 온 세계가 울었다. 죽은 시리아 아이의 이름은 아일란 쿠르디였다. 나는 누나의 품에 안겼던 쿠르디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두 남매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때 내가 그 눈망울에 반응해주고 따뜻하게 다가가 얼마라도 쥐어줬더라면, 아니 한국에 돌아와 흥청망청 나눠주어 없애고 말았을 그 로쿰을 한 상자만이라도 주고 왔더라면. 머뭇거리기만 했던 나는 왜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지 못했을까. 아, 남매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그 광장에 있을까?

온 세계가 울었던 그날로부터 며칠 후 내가 펼친 신문의 한 칼럼에서는 쿠르디의 사진 한 장이 난민 문제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것에 대해 다루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고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스탈린의 말처럼, 우리는 눈으로 보지 못한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로 여기면서도 사진으로 보았던 쿠르디의 죽음은 비극으로 여겼다. 생명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소중한 것인데도 말이다. 칼럼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은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 못 한다.”

만약 우리가 쿠르디의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무시했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난파된 상황에서 고통받는 아이의 목소리가 녹음돼 세상에 공개됐다고 해도 결과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쿠르디의 사진을 우리 두 눈으로 확인했기에 우리는 아이의 고통에 공감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쿠르디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게 됐다.
_ 김인수, 「인간은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타인의 고통에 공감 못한다」
(<매일경제> 2015년 9월 8일자 칼럼) 중에서

그러나 사진이 아닌 실제의 현장을 보면서도 우리는 ‘가까이 가지 말라’는 내면의 소리에 충실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자기 눈으로 보고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궤도를 벗어난 여행지에서 우리는 그 ‘현장’을 더욱 자주 목격한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쩌면 그래서 하찮은) 이유로 그 현장이 보여주는 것들을 애써 외면한다.

골치 아픈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큰 맘 먹고 시간과 돈을 들여 떠나온 여행이라서, 여행지에서 어둡고 아픈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들을 추억하고 싶어서, 낯선 미지의 것들은 위험하고 두려워서.

아니, 이국땅에서 맞는 이 신록을 비추는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내 발 밑을 적시는 투명한 바닷물을 온전히 느끼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서, 오늘 먹은 크루아상 맛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이렇게 누리고 갈 찬란한 것들만 챙기기에도 마음이 가득 들어차서.

오늘 여기에서 만난 그들에게 우리는 가까이 가지 못한다.


가까이 가세요, 고작 2달러 팁으로 두고 나온 것들에
전쟁 난민 문제나 인디언 문제와 같은 거창하고 인류애적인 것까지 갈 것도 없다. 여행지의 호텔에서 아침마다 욕실 바닥에 쌓아놓고 나오는 수건 더미들은 어떠한가. 매일 저녁 쾌적한 상태로 바뀐 침대 시트를 한껏 엉클이고 푹 꺼지는 베개에 살을 부비며 숙면하는 것은 분명 여행이 주는 행복 중 하나이다. 매일 새로 개켜져 있는 깨끗한 수건을 누리며 상쾌한 샤워와 함께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하루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아침도 분명 여행이 주는 설렘 중 하나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준비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조식을 먹으러 가는 복도에서 선글라스를 화장대 위에 놓고 나온 것을 깨닫고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면, 나는 불편한 광경과 만나게 된다.

욕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아놓고 나온 수건 더미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빈 생수병들, 엉클어진 침대 시트, 어제 화장을 지우고 버려둔 마스카라 묻은 화장 솜……. 거울에 비친 말끔하게 차려입은 내 모습이 무색해지는 광경이다. 불편한 순간, 나를 머뭇거리게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흙탕물에 빠뜨린 반지를 꺼내기 위해 손가락을 잠깐 담갔다가 얼른 꺼내는 것처럼, 나는 그 ‘더미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방에 잠깐 담갔다가 선글라스만 얼른 낚아채고 내빼어버린다. 방문 밖의 미지의 여행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벅차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누려야 할 아름다운 것들에 가슴이 너무나 설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고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것은 처음과 같이 새것의 상태로 바뀌어 있다. 나는 아침의 모든 불편한 마음을 잊고 다시금 그 쾌적한 호사를 누릴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침대 머리맡에 놓고 나온 고작 2달러의 팁에 나의 죄책감과 불편함을 함께 얹어 놓고 문 밖을 나설 것이다.

그렇게 매일 나는 그 불편함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어린이작가 최지윤의 그림책은 내게 분명한 마음의 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길보다 가슴에서 손발로 가는 길이 더 멀고 험난했다. 뉴욕에 갔을 때 소호에 있는 서점 하우징웍스Housing works bookstore에 들른 적이 있다. 이곳은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기부재단으로 노숙자와 에이즈 환자들을 후원한다. 모든 수입은 재단에 기부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콘돔을 권하는 독특한 서점이다.

서점 곳곳에는 “I(봉사자 이름) supported the braking AIDS ride”라고 쓰인 종이들이 붙어 있다. 그 종이에 내 이름을 넣어 읽으며 그토록 ‘가까이 가기로’ 다짐했지만 나는 냄새 하나에 무너졌다. 나의 코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냄새를 의식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냄새의 근원을 찾아 킁킁대던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분이 나오자 냄새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라운지로 오르는 계단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서점에서 나올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토록 다짐하고도 타인의 냄새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나, 이토록 서글프고 옹졸한 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다가가 손 내밀지는 못할 망정, 가까이 가기는커녕, 한 공간에 잠시 함께 머무는 것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나약해빠진 몸뚱이.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 것,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그냥 ‘같이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을 힘겨워한다면 나머지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은 공허한 다짐일 뿐인데……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의 구입을 문의하셨던 분들, 독자가 되어주시길 원하는 분들께 안내드릴게요.
이 책을 구입하기 원하시는 분들께 '만원의 행복'으로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소량인쇄했기에) 1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갔으므로 사실상 인쇄비용보다 적은 금액이에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독립출판사는 교사의 자비 부담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아요.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의 창작그림책을 비매품으로 출판등록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책으로 보다 의미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일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총230권 한정판으로 출간한 책 중에서 현재까지 책을 구매해 주신분들께서 보내주신 금액이 벌써 70만원이 넘었어요.
독자들의 품으로 간 책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 성함과 주소를 남겨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MbxbXrEGb6YKsZ6B2q3dNz-MQq5XvTuizlM42Gv6qo7llg/viewform?usp=sf_link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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